여성국극의 히어로, 2024년 부천만화대상의 주인공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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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국극의 히어로, 2024년 부천만화대상의 주인공 되다
  • 윤민 기자
  • 승인 2024.07.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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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이레 작가와 나몬 작가의 웹툰 '정년이', 2024년 부천문화대상 수상

[뉴스피크] 

소재에 대한 깊이 있는 조사와 이해, 

단순한 서사와 에피소드도 톡톡 튀게 만드는 캐릭터, 

깔끔하고 시원하게 다가오는 그림이 어우러져 만든 작품

▲정년이 _ 글 서이레/그림 나몬 ⓒ 뉴스피크
▲정년이 _ 글 서이레/그림 나몬 ⓒ 뉴스피크

 

<정년이>는 인기와 의의에 비해 주목받지 못한 여성국극을 새롭게 조명하고자 한 서이레, 나몬 작가가 만나 탄생한 작품이다.

부자가 되고 싶은 윤정년, 최고의 국극배우가 되고 싶은 허영서, 좋아하는 이의 곁에서 묵묵히 노력하는 홍주란. 원하는 바는 다르지만 여성국극이라는 예술 속에서, 그리고 무대를 통해서 꿈을 이루고자 한다.

매력적인 그림체와 개성 있는 여성캐릭터들은 연재 초부터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았고, 이러한 화제성에 ‘여성서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심사평]

스토리와 작화, 캐릭터의 구현 등 기본적 만화의 구성 측면에서 완성도가 높으며, 독특하고 한국적인 소재 ‘여성국극’을 사용했음에도 대중적으로 이야기를 잘 풀어낸 점이 돋보인 작품이다.

 

_ 부천만화대상 홈페이지 

지난 7월 4일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은 '제21회 부천만화대상' 대상으로 서이레, 나몬 작가의 ‘정년이’를 선정했다. 

2004년부터 시작된 ‘부천만화대상’은 작품성과 대중성에서 한 해 동안 가장 주목받은 만화를 선정해 시상하고 있다. 

2024년에는 대상 ‘정년이‘ 외에 ‘신인 만화상’에는 노경무, 쏘키 작가의 ‘안 할 이유 없는 임신’이, ‘해외 작품상’은 13세기 강대국을 농락한 노예 소녀 ‘시타라’의 인생담을 그린 ‘천막의 자두가르’가 선정됐다. ‘학술상’엔 자본주의 속성이 문화적으로 어떻게 발현되는지 점검한 전주대학교 유인혁 교수의 ‘한국 플랫폼 스토리텔링에 나타난 인간 관리자의 서사와 감정 자본주의’를 선정했다. 

▲ ⓒ 뉴스피크
▲ ⓒ 뉴스피크

또한 현재 부천만화대상 홈페이지에서는 부천만화대상 대상, 신인상, 해외만화상 수상작 후보 작품을 대상으로 독자가 직접 뽑는 ‘독자 인기상’ 온라인 투표가 8월 11일까지 진행되고 있다. 투표 기간 동안 수상작의 홍보를 위해 투표 참여자를 대상으로 SNS 이벤트를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수상작의 시상식은 10월 3일 ‘제27회 부천국제만화축제 개막식에서 진행할 예정이며, 부천국제만화축제 기간 중 수상작 전시도 진행될 예정이다.

 

웹툰을 풍요롭게 만드는 조사와 협업의 힘 

 

‘정년이’는 한마디로 목포 소녀의 여성 국극 제패기라고 할 수 있다. 

목포 어시장의 뜨내기 ‘정년’이는 국극배우가 되면 돈을 가마니로 번다는 이야기를 듣고 매란국극단에 들어가고, 단원들은 정년이를 신기하게 여기거나 아주 불쾌해한다. 그러나 ‘정년’이는 배역에 대한 뛰어난 공감 능력과 진실된 표현으로 단원들과 관객을 사로잡고 진정한 국극인으로 거듭나게 된다. 

그런데, 국극이란 무엇인가? 

옛날, 나이가 기억나지도 않을 정도로 어릴 적이었던 70년대, 전라도의 제법 큰 도시에 살던 나는 어머니를 따라 장터를 나가게 되었다. 

아마 자주 따라 다녔겠지만, 그날이 특별히 기억나는 이유는 아마 국극을 봤기 때문이리라. 

천으로 둘러싸인 넓은 공간을 들어서면 저고리와 치마를 입은 아주머니들이 앉거나 서서 무대를 바라보고 있었고, 멀리서 봐도 그 화장의 진함이 선명하게 느껴지던 여성배우들이 묘한(나에게는) 노래와 연기를 하고 있었다. 동네 아주머니들은 넋을 잃고 무대를 보고 있었고, 나는 그저 어머니의 치맛자락만 더 세차게 붙들고 있었다.  

이게 국극에 관한 나의 유일한 기억이고 만남이었다.

여성국극은 창과 판소리에 제법 익숙하다 할 중장년에게도 낯설다 할만한 전통예술극이다. 창극의 한 갈래이며, 연극의 한 장르이지만 연기로 보여주는 연극과도, 한 사람이 모든 배역을 도맡는 판소리와도 다르다. 그리고 전원이 여자이다. 

1948년 국악원에서 여성들만이 떨어져 나와 여성국악동호회라는 것을 조직한 것이 여성국극의 시작이었다고 한다. 박녹주(朴綠珠)를 대표로 하여 김소희(金素姬)·박귀희(朴貴姬)·임춘앵(林春鶯) 등 당대의 기라성 같은 여성 소리꾼 30여 명이 조직한 여성국악동호회는 시작과 동시에 크게 인기를 얻었다. 그리고 몇 년 지나지 않아 창극계를 압도하며 대중예술의 총아로 떠올랐다고 한다. 

정년이의 꿈처럼 돈이 국극판에 모여 들었고, 이는 인기에 편승해 우후죽순처럼 국극단을 만들게 하고, 결국 고루하고 진부한 공연을 재생산하게 만들었다. 여기에 영화와 TV가 사람들의 인기를 차지하기 시작하면서 화려한 60년대와 함께 짧은 여성국극의 전성기는 저물게 된다. 그 몰락은 너무도 급격해서 70년대는 지방소도시 장터 외에는 그 자취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정년이’의 놀라운 점은 기억조차 가물가물하고, 잠시 유행했다 사라진 그 예술무대의 풍경을 현대의 시각미디어로 화려하게 불러온 것이다. 스쳐간 한두 줄의 역사 속 소재를 꼼꼼하게 조사하고, 거기에 활달한 캐릭터와 심리를 덧붙여 그 시대, 가려져 있는 공간의 이야기를 살려내었다. 사실 연재되는 웹툰의 70% 이상이 하나의 장르에 머무르고 있는 게 최근 한국 웹툰계의 현실에서, 때로는 캐릭터나 이야기의 구조나 대중적인 장르보다 그 소재와 배경이 더욱 놀라운 감동을 전하는 경우가 있음을 여기서 확인하게 된다.  

서이레 작가는 어떤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대학 때 전공 서적인 ‘한국 문학 통사’란 책에 나온 한두 줄의 여성 국극 설명을 본 친구가 흥미 있는 주제라고 추천해주면서 ‘정년이’ 이야기가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즉, 그때부터 자료 조사가 시작된 것이다.  

사니라오의 작법서를 보면 가장 먼저 나오는, 누구나 강조하는 말이, 아마추어는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를 기다리지만 전문작가는 바로 조사를 시작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서작가의 또 다른 인터뷰에서 “문제는 가만히 손 놓고 있으면 아무리 기다려도 영감님은 잘 오지 않아요.”라는 작가의 말에 깊게 공감하는 이유이다. 

 

단지 글뿐이 아니다. 다양한 활동으로 주목받고 있는 그림작가인 나몬 역시 ‘정현이’의 시대와 캐릭터의 재현을 위해 겪었던 치열함을 여러 인터뷰에서 토로했다. 

웹 서핑은 기본이었고, 1950년대 사진가인 한영수 작가의 서울 사진과 뉴스 라이브러리에서 과거 신문들을 찾아 참고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레 작가와 함께 여성 국극 다큐멘터리를 만든 PD를 인터뷰하거나, 여성 국극을 테마로 한 미디어아트 전시를 찾아다니기도 했다. 

이미 맥이 끊긴 역사의 한 장면과 인물의 무대는 그렇게 웹툰으로 재현된 것이다.  

두 작가 모두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선보인 중견작가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발로 뛰는 걸 주저하지 않았고, 함께 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은 듯 보인다. 게다가 두 작가의 협업은 왠지 요즘 스튜디오에서 글과 그림을 나누고, 분업하는 시스템과는 달라 보인다. 

서 작가는 “같은 배를 탄 사람들”이고, 정해진 게 없기 때문에 “많이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서로의 분야나 방식 차이를 해결하기 위해 드라마 대본이나 시나리오, 희곡을 보고 좀 더 공부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지시문을 정확하게 써서 캐릭터의 행동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장면에 대한 서술을 통해 이미지로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마 이런 두 작가의 노력 때문에 시대극이면서도 현대적인 스타일과 명쾌하고 섬세한 국극 배우들의 연기를 살려낼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된다. 

 

좋은 사례가 생기면 적극 따라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발로 뛰는 스토리, 엉덩이로 그리는 웹툰, 그리고 탄탄한 협업으로 만들어진 또 다른 작품을 기대하면서, ‘정년이’의 부천만화대상 수상을 다시 한 번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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