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강호 - 삼국지, 새로 읽다!(12)
[뉴스피크] 책을 읽을 때 주위의 사물은 우리에게 매우 강한 인상을 남긴다. 깊어가는 겨울 속의 책읽기, 이보다 더 짙은 추억의 풍경이 어디 있으랴! 그 언제던가? 소년은 깊어가는 어느 겨울 저녁 아궁이에 장작불을 지핀다. 버썩 마른 장작들이 탁탁 소리를 내며 타들어가는 모습! 아궁이 속의 불꽃 환타지는 소년의 무의식에 깊이 아로새겨진다.
그 요염한 불꽃의 출렁임을 바라보며 주위가 따뜻해질 무렵, 군데군데 검정 칠을 한 소년은 더운 물에 얼굴과 손발을 깨끗이 씻고 방으로 들어간다. 아아, 온기가 스며든 군불 땐 겨울의 방! 이곳은 어린 소년에게는 더할 나위없는 즐거운 공간이자 벗이다.
윗목에는 강냉이 튀긴 것과 군고구마가 몇 개 놓여 있고, 내친 김에 가래떡을 몇 개 준비해서 조청을 찍어 먹을 준비를 끝내면 소년은 눈 내리는 고요한 밤이 자신만의 시간이 되어준 것에 감사해 한다.
장작불의 온기가 올라와 방바닥에 닿은 엉덩이에 따끈한 감촉이 느껴질 때 소년은 이미 관우가 온주참화웅(溫酒斬華雄)하는 대목을 펼치고 있다.
원소의 질시를 뒤로 하고 실용적인 기풍의 조조가 관우를 위해 따라준 한 잔의 술, 일배주! 영웅의 기상이 여기에 있도다. 딸랑거리는 말방울 소리가 귓전에 들릴 때면 천하 제후들이 관우의 위용에 압도되는 풍경이 그림처럼 전개된다.
삼국지에는 꽃피는 도원의 풍경이 있는가 하면 눈보라가 휘날리는 삭풍이 있고 스산한 오장원의 가을이 있다. 소년은 때로는 삼국지의 계절을 감상하고 때로는 자연이 연주하는 바람 소리를 들으며 혼곤히 잠에 든다. 이렇게 겨울에 읽는 삼국지의 밤은 깊어간다.
저작권자 © 뉴스피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