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2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정조대왕이 ‘당나라 군대’에 주목한 까닭은? 정조대왕이 ‘당나라 군대’에 주목한 까닭은? 1777년 2월 1일, 밤 9시, 경희궁 흥정당에서 야대(夜對)가 열렸다. 도승지 홍국영도 경연을 주관하는 참찬관으로 참석했다. 몇 차례 열린 주강과 달리 야대는 이날이 처음이었다. 교재는『육선공주의』로 당나라 때의 관료이자 학자였던 육지가 왕에게 잘못을 고치도록 간(諫)한 글을 모은 책이다. “야대할 때는 나누어 읽는 것이 좋겠다”는 정조의 제안에 따라 김영호 - 무인 정조 | 김영호(한국병학연구소장) | 2014-03-27 정조대왕, 그의 이름은 이성 정조대왕, 그의 이름은 이성 1994년 여름에 《민족무예》창간호를 펴냈다. 회보를 펴내면서 내걸었던 주장이 있다. 벌써 꼭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때 다짐했던 스스로와의 약속을 오늘까지 변함없이 붙들고 있기에, 기념으로 전문을 옮겨 보았다.“우리 무예의 고전인 무예도보통지를 연구함에 있어 빠트릴 수 없는 과제가 바로 우리 무예를 세우는데 헌신한 인물들을 만나는 일이다. 이 분들의 김영호 - 무인 정조 | 김영호(한국병학연구소장) | 2014-03-13 처음처음1끝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