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값 없는 책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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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값 없는 책값
  • 김희만(헌책장서가)
  • 승인 2014.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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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만 - ‘헌책방의 인문학’(10)

우리가 살고 있는 요즘 세상에서 돈은 가장 중요한 가치체계 중의 하나이다. 전근대사회에서 돈이나 이를 대행할 수 있는 수단이 당시 사회에서도 주요했던 것은 사실이다. 특히, 근대사회에서 배태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가운데 하나인 자본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구조는 현대사회에서도 그대로 전이(轉移)되어 만연하고 있는 실정이다. 돈에 웃고 돈에 우는 그런 세상 말이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다양한 헌책방이 명함을 내밀고 있다. 시간이 나면 가끔씩 들르게 되는 그 서점들은 대로변에 위치한 곳도 있지만, 골목이 좋아서 그런지 한참 찾아야만 만날 수 있는 그런 곳도 적지 않다. 세월을 많이 거슬러 올라가는 책방일수록 가끔은 숨바꼭질을 하게 만드는 재주가 숨어 있다. 그래서 정감이 있는 것이다. 찾아가는 재미도 쏠쏠하다.

새 책은 누구나 알기 쉽게 바코드와 더불어 그 주변에 어김없이 책값이 매겨져 있다. 이 책 저책 만져보다가 마음에 드는 좋은 책을 선정하면 자연스레 그곳에 눈이 집중된다. 현실을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선택한 상대가 마음에 들면 그 시간부터 내 친구로 등록된다. “그런데 말입니다.” 헌책방은 다르다는 것이다. 이들 헌책방에 가면 그곳만의 독특한 책값 표시가 우리를 갸우뚱하게 한다.

그곳에 가면 상대를 열심히 탐색하다가 문득 궁금할 때가 있었다. 이 책은 얼마나 할까? 다소 조심스레 주인장에게 실례를 무릅쓰고, 다소곳하게 목소리를 낮추어 한마디 건넨다. 이 책은 얼마입니까?, 그러면 바로 답이 날아온다. 책의 뒷면에 연필로 쓴 값이라거나 맨 뒷장에 쓰인 가벼운 숫자를 말하거나, 아니면 책의 윗면이나 아랫면을 가리키며 거기에 기재한 금액이 책값이라고 알려주신다. 아하!. 그렇군요.

여기까지는 양반이다. 어느 서점 주인장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몇 권을 살지 골라와 봐요.”라고 말이다. 이 정도 되면 책과의 연애가 불안해진다. 미팅에서 만난 여성이 어떤 취향인지도 모르는데, 그가 좋아하는 식음료를 주문하고 그에 발맞추어 대화를 지속하는 것과 같은  어려운 형상 자체일 것이다. 이럴 때 책값은 우리를 불안하게 한다. 가끔은 자유로운 영혼이고 싶어서 떠난 헌책방 나들이가 그리 달갑지 않게 다가온다.

그래도 헌책방 순례는 낭만이 있고 감정이 살아 있다. 어디를 가든 넉넉한 주인장이 있고, 주고받는 대화가 살아 있으며, 무언가 따뜻한 정감이 오고가며, 음료수의 인심이 버티고 있다. “그런데 말입니다.” 요즈음의 헌책방 풍속도가 달라지고 있음을 느끼는 것은 혹여 나만의 얘기는 아닐 것이다. 인터넷 세상이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곳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다수의 헌책방에서 가격 정찰제(?)가 실시되고 있다. 책을 골라 계산을 할라치면 책의 이름을 일일이 호명하면서 그 값을 찾는다. 오호통재라!

사실 헌책방의 묘미는 구석구석 박혀 있는 보물을 찾는 재미도 있거니와, 책값 없는 책값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기대하는 것도 하나의 기대일 텐데, 그러한 묘미가 사라진 것이다. 아마도 컴퓨터가 일반화되고 더불어 인터넷 활용 능력이 배가되면서, 인터넷 서점이 다량으로 늘어난 현상 때문일 것이다. 어디서나 편리하게 필요한 자료를 검색하고, 다른 서점의 정보도 공유할 수 있다 보니 책값의 평균화 내지 정가제(?)가 시도되는 과정이다. 획일화된 문화를 좋아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문명의 이기(利器)를 탓해야 하나 순응해야 하나, 이것도 불편한 진실이다.

얼마 전에 문명의 이기인지 무기(武器)인지 모르는 인터넷을 통해 책을 한 권 산 적이 있다. 가끔 이 사이트 저 사이트를 통해 필요한 책을 구입하지만, 이 날은 좀 묘한 분위기가 있었다. 분명 사진과 함께 올라온 책을 살펴보니까 그동안 못 보던 책이라 이 책이 원본인지 아닌지 궁금했던 것이다. 다소 주춤하다가 전화로 주인장과 통화를 시도하였다. 진품이냐고 말이다. 그렇단다. 그래서 주문을 하고 책을 받아 보았다. 예전 같으면 달려가서 매만지고 값을 치르고 왔을 텐데, 안타까웠다.

▲ 『국조방목』의 태조조(太祖朝) 계유년 춘장방(春場榜)의 일부분(국회도서관 발행, 1971년) ⓒ 김희만
그 때 구입한 책이 바로 『국조방목(國朝榜目)』 으로, 여기에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명단을 수록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날로 발전해가고 있지만, 아직도 한 켠에서는 그 뿌리를 중요시하는 문화가 유지되고 있다는 측면에서, 과거에 합격했던 선조들의 자랑스러운 모습을 확인하는 것 또한 후손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런 면도 무시할 수 없었지만, 당시 비매품으로 발간되어 구경하지도 못했던 책에 대하여, 그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어서 구입을 강요하였다.

그 앞머리에는 문과방목(文科榜目)의 해제 및 서문이라 하여,

국조방목을 영인하게 된 이유는 이 영인본은 원본을 그대로 복사한 것이 될 뿐만 아니라 이 원본에는 급제자의 父名, 祖名, 曾祖名 등과 또 外祖와 丈人(妻父)의 이름도 기재되어 있고 본관을 표시하는 위에 某子 某父 某弟 某兄 某祖 某孫이라고 등 표시한 것이 바로 급제자의 근친자 중 문과 급제자를 표시하였기 때문에 이 방목이 여러모로 國史를 연구하고 한국을 연구하는데 참고가 되기 때문이다. 

라고 하여, 조선시대 권력층의 형성, 지도자군의 변천, 씨족과 지배계급과의 관계 등 여러 가지의 참고자료를 이 책 한 권이 간직하고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이 책이 1971년 간행되었기 때문에 이후 이에 대한 여러 연구가 집성되고, 또한 새로운 이해가 집적된 현 상황에서 볼 때, 퇴색된 내용이 없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유효한 자료임에는 틀림없다.


* 필자 소개
김희만 : 한국사를 전공하였으며, 특히 정치사회사에 관심이 많다. 역사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헌책을 좋아하여 시간이 날 때마다 책방을 뒤지고 다니는 헌책장서가라고 할 수 있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만나는 일을 하고 있다.

이 책의 원본을 부연 설명한 내용을 잠시 더 들어보면,

원래 이 책의 원본이 되는 국조방목은 지금 규장각에 三種本이 있다. 其一은 12책으로 되어 있는 본인데 이것은 책의 크기가 제일 크고 또 명저(明苧)로 장정이 되어 있어 가장 정성을 들여 만들어 놓은 책이다. (중략) 단정하게 줄을 쳐서 毛筆로 書寫되어 成冊되어 있다. 이 책이 이번에 내놓는 영인본의 기본 대본이 된 책이다. 이 대본 이외에 또 두 가지 원본이 있는데 이것은 모두 前記 원본보다 약간 적은 책으로, 하나는 8책으로 되어 있고 하나는 10책으로 되어 있다. 크기가 모두 4 6배판 정도로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2종의 적은 대본은 모두 영조 혹은 정조때까지만 기록되어 있다.

라고 하여, 원본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하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3종의 대본이 모두 수록되어 있으며, 고려말 과거 사적(麗末科擧事蹟)을 부록으로 첨부하여 완벽을 기하고 있다. 이와 같은 자료가 당시에 발간되었던 것은 조선시대를 연구하는데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 일성록, 비변사등록 등 다양한 자료뿐만 아니라, 조선사회를 움직여간 관료들의 행적이 중요하다고 판단해서 간행하였다는 점에 더욱 공감이 가는 책이다.

이 책을 구입한 경로는 시대의 흐름에서 멀어질 수 없는 인터넷을 통해서였다. 헌책방의 풍속도가 점차 달라지고 있음을 실감한다. 현대사회에 맞추어 살기를 주문한다. 그런데 기계를 통한 편리함보다는 책값 없는 책값을 선호하고 있는 것 같다. 헌책방의 획일화된 가격보다는 헌책방만의 맛을 누릴 수 있는 책값 없는 책값에 아직도 미련이 남는다. 헌책방의 맛이 퇴색하는 게 싫은 모양이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필자 소개
김희만 : 한국사를 전공하였으며, 특히 정치사회사에 관심이 많다. 역사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헌책을 좋아하여 시간이 날 때마다 책방을 뒤지고 다니는 헌책장서가라고 할 수 있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만나는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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