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권하는 사회, 술 권할 수 있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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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권하는 사회, 술 권할 수 있는 사회
  • 김희만(헌책장서가)
  • 승인 2014.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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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만 - ‘헌책방의 인문학’(6)

어떤 이는 술이 최고의 음식이며, 최고의 문화라고 한다. 인간사의 시작과 술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인과관계 그 자체이다. 따라서 술에 얽힌 일화 한 구절 없는 사회인은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술의 예찬론자가 있는가 하면, 술의 망국론자가 있기도 하다. 그만큼 술이 가진 마법은 무궁무진한 것이다. 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의 삶에 있어서 술은 인생이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면 그 성패에 관계없이 술을 생각한다. 우스갯소리로, 월요일은 한 주의 시작이라서, 화요일은 화가 나서, 수요일은 술이 생각나서 마시고, 목요일은 목이 말라서, 금요일은 금주하는 의미에서, 토요일은 토하게 마시고, 일요일은 일이 없어서 마신다는, 핑계 아닌 핑계가 우리의 저변에 깔려 있다.

술에 대한 관심은 음식과 연관하여 가끔 관련서적을 만지작거리다가 인연이 되었다. 실제 술에 대한 책은 많은 것 같으면서도, 그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노라면 그렇게 다양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예전에 모 방송국에서 대장금이라는 프로그램이 한창 진행 중일 때 한 통의 전화를 받았던 적이 있다. 당시 임금에게 진상하던 품목에서 좀 특이한 물품을 선정하여 그것을 재현하는 방송을 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메일이 오고가고 하면서 보다 구체적인 작업이 진행되었다. 여러 사항 중에서 술에 대한 것도 빠지지 않았다. 그리하여 이 책 저책을 뒤지다가 만났던 책 가운데 하나가 바로 빙허각 이씨가 언문으로 작성한 『규합총서(閨閤叢書)』라는 책이었다. 이 책을 어떻게 구입했는지 자세히 알 수가 없다. 그것은 이 책을 매입할 당시 근처에 있는 서점 여기저기를 찾아다녀도 만나기가 쉽지 않아서, 아마도 어느 헌책방인지 알 수 없으나 사방을 헤매다가 어렵게 구입했기 때문이다. 헌책방에서도 고가(?)였던 기억이 난다.

이 책의 저자인 빙허각 이씨는 전주 이씨로, 판돈령(判敦領) 문헌공 창수의 딸로 어머니는 유명한 언문지(諺文誌)의 저자인 유희의 고모이다. 남편은 서유본으로 그의 아우가 『임원경제지(林園經濟誌)』의 저자인 서유구인 것이다. 유희나 서유구는 우리가 고등학교 국사시간 때 배웠던 인명에 포함되어 있었으니 그 유명세는 알 만하다. 이들에 대해서는 이 공간에서 차후 만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볼 예정이다.

* 필자 소개
김희만 : 한국사를 전공하였으며, 특히 정치사회사에 관심이 많다. 역사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헌책을 좋아하여 시간이 날 때마다 책방을 뒤지고 다니는 헌책장서가라고 할 수 있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만나는 일을 하고 있다.
이 『규합총서』는 그야말로 가정백과사전에 다름 아니다. 그 목차를 보면 술과 음식부터 바느질과 길쌈, 시골살림의 즐거움, 병 다스리기 등이 빼곡히 기록되어 있다. 또한 술과 관련된 내용을 간단히 언급해보면, 여러 나라 술 이름, 고금의 술에 대하여, 옛 후비가 만든 술 이름, 술 이름 소사, 술잔 이름, 술 마시는 이야기, 약주 열일곱 가지, 구기주 오가피주, 술 빚기 좋은날, 술 못 빚는 날, 꽃향내를 술에 들이는 법, 그리고 약주 여러 가지를 나열하고 있다. 이처럼 소상하면서 다양한 술에 대한 책을 본 적이 있는지 자문해본다.

그 가운데 재미있는 내용의 일부를 소개해보면, 

술 마시고 먹어서는 안 될 것
술꾼의 병은 계지탕(계수나무의 잔가지를 주성분으로 끓인 탕)을 먹지 못하는 법이니, 양기를 얻은 즉 반드시 토한다. 그렇기 때문에 술꾼은 단맛을 즐기지 않는다.

막걸리를 먹고 국수를 먹으면 기운구멍이 막히고, 취한 뒤 바람맞이에 누우면 끝이 그릇된다. 술 마신 뒤 몹시 목이 마르더라도 찬물을 먹지 말아야 하니, 찬 기운이 방광에 들어가면 수종·치질·소갈증이 생기고, 홍시·황율·살구·벚(버찌)·조기 등의 음식은 상극이니 먹으면 안 된다.

술이 깨고 취하지 않는 법
곤드레만드레 취하여 밀실 안에서 뜨거운 물로 세수하고 머리를 수십 번 빗질하면 깨고, 소금으로 이를 닦고 더운 물로 양치를 하면 세 번만 해도 통쾌해진다. 

이 두 가지 내용은 빙산의 일각이다. 당시 사회에서 빙허각 이씨는 어떻게 이 많은 지식을 습득하였을까 궁금해진다. 그리고 왜 그러한 사실을 적어서 남기려고 하였을까도 의문이다. 아마도 집안의 가계가 이를 대변해주는 것이 아닐까 한다. 서유구의 『임원경제지』를 보면 그 속편을 보는 재미가 쏠쏠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술을 권하는 사회였다. 그것이 누구에게나 좋았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 한 예가 현진건의 ‘술 권하는 사회’에 보이기 때문이다. 한 구절을 만나보자. 

『흥 또 못 알아듣는군. 묻는 내가 그르지, 마누라야 그런 말을 알 수 있겠소. 내가 설명해 드리지. 자세히 들어요. 내게 술을 권하는 것은 홧증도 아니고 하이칼라도 아니요, 이 사회란 것이 내게 술을 권한다오. 이 조선 사회란 것이 내게 술을 권한다오. 알았소? 팔자가 좋아서 조선에 태어났지, 딴 나라에 났더면 술이나 얻어 먹을 수 있나…….』
사회란 무엇인가? 아내는 또 알 수가 없었다. 어찌하였든 딴 나라에는 없고 조선에만 있는 요리집 이름이어니 한다.
『조선에 있어도 아니 다니면 그만이지요.』
남편은 또 아까 웃음을 재우친다. 술이 정말 아니 취한 것같이 또렷또렷한 어조로.

이를 보면, 우리 사회가 술 권하는 사회인 것 같지만, 그것이 즐거운 일이 아님을 웅변해주는 것만 같다. 흔히 우리 사회는 담배와 술 인심이 좋다고들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담배와 술은 예나 지금이나 우리 인생의 동반자요, 함께 하는 자 또한 동반자이기 때문은 아닐까? 금기시하는 요즘의 세태는 좀 다르겠지만 말이다.

어느 날 움직이던 시계가 멈추어 섰다. 모두들 세상사에 의욕을 잃고, 자탄에 빠지고, 크게 분노를 하고, 그저 눈물만 하염없이 흘렸다. 그 좋아하던 술도 마실 수가 없다. 이 사회가 술을 권하지도 않는다. 어떻게 하면 술을 권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 되뇌어본다. 진정 우리 사회는 술 권하는 사회인가? 아니면 술을 권할 수 있는 사회인가? 답변이 필요한 시점이다. 현진건의 ‘술 권하는 사회’에 나오는 아내의 푸념이 새삼 시공간을 초월하여 다가오는 듯하다. 『그 몹쓸 사회가, 왜 술을 권하는고!』

  

* 필자 소개
김희만 : 한국사를 전공하였으며, 특히 정치사회사에 관심이 많다. 역사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헌책을 좋아하여 시간이 날 때마다 책방을 뒤지고 다니는 헌책장서가라고 할 수 있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만나는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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