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펭귄의 북디자인 이야기
북 디자인 프로젝트를 둘러싼 아트 디렉터, 저자, 디자이너들의 솔직한 이야기
미메시스
폴 버클리 엮음
책을 계획적으로 사는 사람도 적지 않겠지만, 나로 말하자면 대부분을 우연히 지나가다 구입하는 편이다.
그리고 직업이 종이와 책에 관련된 일이다보니 남들보다 유심히 책을 보는 편이다.
이 책 역시 우연히, 아는 이의 손을 거쳐 건너왔고, 표지의 깔끔함과 내용의 색다름에 흥미를 느껴 쉽게 책장을 넘기게 되었다.
그러다 책 중간에서 이 대목을 만났다.
“우리 업계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보자마자 딱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뭐가 대단하다는 거야? 나라도 할 수 있겠구만.' ”
사실 책이라는 업계만, 디자인이라는 분야에서만 만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그래픽디자인은 넘쳐나지만 쓸 만한 북디자인을 만나기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리고 그리 고민하고, 어렵게 만들어낸 표지와 디자인이 저리 가볍게 취급된다면 누구나 분노하고 서글퍼질 것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출판사인 펭귄 북스의 75주년을 기념하여 출간한 이 책은 아마 이런 분노와 서글픔을 공감하기 위한 가장 친절한 안내서가 되지 않을까 싶다.
사실 책이나 디자인업계에서 일하지 않은 사람이 그 감정을 느끼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어렵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우리 주변을 둘러보라. 어디에도 책과 종이와 그 위에 새겨진 디자인과 색이 있으니.
한때 내용에 맞는 북디자인에 목말랐던 적이 있었다. 책을 내야 했었는데, 본문 디자인은 어찌저찌해서 통과되고 마무리가 되었는데, 표지가 안 나온 적이 몇 번 있었다. 한번은 본문이 인쇄가 끝났는데도 표지 디자인이 결정이 되지 않은 적도 있었다. 표지는 책의 원고보다도 먼저 기획과 함께 고민을 시작하고, 인쇄가 끝나기 전까지 골치를 썩히는 가장 어려운 대상이 되어버렸다.
그러다보니 언제 어디서고 눈에 들어오는 표지가 있으면 걸음을 멈추고 유심히 그것을 살펴보게 되었다. 한번은 다른 부서를 지나다가 한 여직원의 책상 위 일본 소설이 눈에 띄었다. 잠시 뭐하는지도 잊고 책을 들고 이리저리 정신없이 살펴보고 있었더니, 그 여직원이 그 모습이 신기하고 재미있어 보였나 보다.
한참 뒤에 우연히 만났더니 요즘 자기도 표지를 유심히 보게 되고, 또 그 재미에 푹 빠졌다고 자랑을 하는 게 아닌가.
그때서야 문득 생각을 해본다.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만큼 사람들은 북디자인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지만, 그것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을. 또한 그 인식하지 못함이 바로 책으로서 얻을 수 있는 만 가지 즐거움 중에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놓치게 된다는 것을.
그래서 한 가지 덧붙여 본다. 이 책은 책을 보는 즐거움을 한 가지 더해주는 좋은 안내서라고. 생생한 질감을 가진 책에서 느낄 수 있는 더없는 즐거움을 가진 존재가 바로 책임을 알려주는 좋은 조언자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지겹게 늘어놓는 이 책이라고.
그럼 이제 책 속으로 들어가 보자.
책 속에는 그동안 펭귄 북스에서 진행했던 75개의 프로젝트에 관련된 이야기가 들어있다. 각 프로젝트에 관한 저자와 편집자, 디자이너 그리고 아트디렉터의 이야기가 가능한 솔직하게 실려 있다는 말이다. 그 이야기가 가끔 공감이 되고, 가끔 실없는 웃음을 짓게 하고, 또 가끔은 놀라운 표지 디자인과 함께 감탄을 금치 못하게도 한다. 그렇지만 결국 이야기 하고픈 바는 이런 것이다.
“출판사의 발행인과 편집자라면 누구나 아트 디렉터와 디자이너의 끝도 없는 한탄, 즉 자기가 만들어 낸 최고의 작품을 사방팔방에서 에워싼 미개인들에게 넘겨주어야 한다는 것에 대한 한탄을 듣는 데 익숙하게 마련이다. 또한 발행인과 편집자라면 누구나 저자의 불평, 즉 디자이너는 아예 원고를 읽지도 않은 것이 분명하고, 이 불쾌한 커버 때문에 자치 저자로서의 경력이 매장당할 것이 확실하다는 불평을 듣는 데에도 익숙해진다.”
책의 저자에 가까운, 아트디렉터이기도 한 폴 버클리가 서문에서 밝혔듯이, 결국 표지디자인이라는 것이 책을 둘러싼 각각의 주체들의 게임과 같다는 것이다. 밀고 당기고, 그러다 원하든 원하지 않던 결론이 난다는 것이다. 결국 평가는 시장이 내려주는.
‘판다에 관한 100가지 사실’에는 영업자의 놀라운 승리가 실려 있다.
“출판사에서 말했다. 자기네가 만든 커버라면 책을 5만 부에서 10만 부는 너끈히 팔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우리는 말했다. 그렇다면 얼마든지 타협안을 도출할 의향이 있다고 말이다. …
우리는 말했다. 그래도 이 커버는 완전히 잘못된 것이라고 말이다.
출판사에서 말했다. 자기네 영업부 직원들에게 보여 주었더니 이거야말로 대단한 커버라고 입을 모았다는 것이다. … 멍청한 놈의 출판사 직원들 같으니.”
책의 저자인 데이비드 오도허티, 클로디아 오도허티, 마이크 어헌의 투덜거림이다.
책이 시장에 좌우되다보니 아무래도 점차 영업자의 입김이 세지는 게 당연하다. 그렇지만 꼭 그런 게 아니다. 영업자가 아무리 경험이 많더라도, 디자이너와 디렉터의 의견이 아무리 타당하더라도 저자의 의견이 조용히 관철되고, 또 시장에서 성공으로 이어질 때도 적지 않은 법이다.
‘예술가가 여행하는 법’이 아마 그런 실례이다.
“데이비드 번이 여러분의 사무실에 찾아와서 자기 책의 커버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상당히 멋진 일인 동시에 약간은 겁이 나는 일이기도 하다.
데이비드는 미리 작정한 듯 자전거 스케치를 몇 장 준비해 와서는, 자기는 매우 단순한 것을 원한다고 뚜렷한 지시를 남겼다. 단순한 것에 관한 부분이야 나도 마음에 들었지만, 자전거의 이미지에 관해서는 약간 조심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자전거 일기’라는 제목이 붙은 책의 커버에다가 자전거 이미지를 사용한다는 것은 … 그 주에 그 시안 작업을 하면서, 나는 데이비드가 무척이나 좋아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 하지만 내 예측은 완전히 빗나갔다. 그는 시안을 들여다보며 조용히 말했다. ‘그렇군요. 흐으음.......’ 이런 반응은 없어야 정상이다. ‘그래요, 알았어요. 그러면 아까 보여 주신 자전거 그림을 완성하면 JPEG로 만들어 보내 주시겠어요?’ 그러자 그가 말했다. ‘예, 그럼요, 그럼요.’ 그걸로 끝이었다. 우리 쪽의 시안들은 결국 휴지통에 들어가고 말았다.”
그리고 많은 부분 저자와 디자이너는 서로를 오해하고, 그 과정은 길고도 지루하기 마련이다.
‘천사제작자’의 경우는 아주 드문 경우라 감히 말할 수 있을 듯하다.
“할렐루야! 마침내 내 책을 실제로 읽은 디자이너가 나타났다! … 이 커버는 완전히 달랐다. 무엇보다도 독창적이었다. 그리고 사상 최초로 내 소설의 내용과 테마와 분위기가 하나의 이미지로 요약되었다. 마치 내가 이 소설의 마지막 장 중간쯤 어딘가에서 이를 단 하나의 문장으로 요약했듯이 말이다.”
놀라운 것은 책을 읽은 디자이너가 아니라 이렇게 말한 저자가 나왔다는 사실이다. 아마 자부심이 강한 북디자이너는 대부분 자기가 맡은 작품을 한 번씩 읽은 후에 작업을 시작하기 마련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작가라면 더욱 그렇다. 그렇지만 아무리 좋아하는 작가라도 그들이 그리는 세상은 많이 다를 가능성이 같을 가능성보다 훨씬 크다.
그러니 ‘이야기의 기술’의 디자이너가 말한 푸념을 새겨 들을 만하다.
“북 커버 디자이너로 일하다 보면 퇴짜를 맞는 것도 업무의 일부분일 수밖에 없지만, 때로는 퇴짜를 맞는 것-퇴짜를 맞을 당시에만 해도 디자이너에게는 무척이나 불합리하게 느껴지지만- 덕분에 결과적으로는 더 나은 커버가 나오는 경우도 있는 법이다.”
때론 거절에 대한 불안으로 가슴 졸이지만, 또 실패가 더 큰 성공으로 이어질까 두렵지만, 그래도 계속 작업을 하고, 나이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거절되고, 수정되었다 하더라도 그건 다른 이의 작업이 아니라 그들 모두의 작업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는 것이다.
책에 나온 디자인과 저자 그리고 내용 속에 스며든 문화는 사실 우리와 약간 거리가 있는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것 모두를 감안한다 하더라도 두툼한 책을 가득 채운 표지디자인은 긴 시간을 짧게 느끼게 해줄 정도로 볼만한 게 사실이다. 그리고 좀 많이 되풀이 되는 부분도 있지만, 책을 대하는 디자이너와 저자들의 좀 더 소탈하고 현실적인 이야기는 책을 더욱 살갑게 느끼게 해줄 게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