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이라는 허상
상태바
이념이라는 허상
  • 범상스님(6.15경기본부 홍보위원)
  • 승인 2013.01.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칼럼] 범상스님(6.15경기본부 홍보위원)
범상스님(6.15경기본부 홍보위원). ⓒ 뉴스피크

이념(理念)의 사전적 의미는 “이성에 의하여 얻은 최고의 개념으로, 온 경험을 통제하는 주체”이며, 서양철학에서는 존재자의 원형을 이루는 영원불변의 실재(實在;idea)라고 주장하는 플라톤을 시작으로 칸트에 와서는 형이상학의 본래 대상인 영혼·세계·신의 3가지 개념 즉, 경험을 초월한 선험적 순수이성으로 정의 되지만, 결국 절대적 그리고 실재라는 범위를 벗어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형이상학의 근본 물음인 ‘변화하는 자연물 배후에 그 존재근거로서 영원불멸의 실재’를 부정하고, 마음·영혼·생각 등은 대상을 인식하는 하나의 도구로서 각자의 업(의지적 행동)에 의해서 형성되며, 그것마저 오염되어 있다고 가르치는 불교적 입장에서의 이념은 매우 허망한 것이 된다.

형이상학을 부정하는 것은 ‘무한 속의 유한’을 말한다. 예를 들면 소리는 아주 미세한 것에서부터 매우 큰 것이 있지만 인간이 들을 수 있는 범위는 한정되어 있다. 그래서 유한의 밖에 있는 ‘인식되지 않는 세계’를 논하는 것은 결코 성스러운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 다는 것이다.

오염이 되어있다는 것은 ‘유한 속의 무한’의 개념으로서, 인간이 들을 수 있는 범위 내의 똑 같은 소리라 할지라도 각자의 입장[업]에 따라 다르게 들리므로 결코 내가 인식하는 소리와 다른 사람이 인식하는 소리는 같을 수 없다는 것이다.

절대와 실재로 귀결되는 서양에서의 이념(idea)이 정치현실에서 인간을 자유인과 야만인으로 나누고 “인간은 본성상 폴리스에 살도록 의도된 동물이다”라는 명제아래 이성적 동물인 그리스인만이 정치를 할 수 있는 본성을 지녔으므로 야만인은 지배를 받아야 마땅하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에 근거가 된다.

유일한 정치적 동물로서의 그리스인이라는 주장은 신으로부터 선택받았다는 유대교와 기독교의 선민주의, 제국주의 식민지공간에서 백인은 신으로부터 선택받은 선민이므로 유색인들 보다 우월하다는 백인우월주의, 그래서 백인들은 유색인들을 구원해야 하는 책무를 지녔다는 이념으로 식민지배를 정당화하고, 자신들의 악행을 선으로 포장하는 서구중심의 사회를 만들었다.

성리학 역시 리(理)와 기(氣)의 논쟁이 치열하지만 “유가 근본이 되어 유에서 실체에 이른다.”는 서구사상과 달리 “무에서 유로 나아간다”는 입장에서 자연과 인간, 객체와 주체는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유무상생으로서 모이고 흩어지는 일시적 변화로 이해한다. 그래서 동양은 서양과 같은 극단(이단)의 현실적 행위가 적었다고 본다.

불행하게도 우리사회는 일본의 직접지배와 미국의 간접지배를 받아오는 과정에서 일본(미국)에 선택된 자와 그들을 추종하는 자들만 옳다는 사회구조가 형성되었고, 이번 18대 대선에서도 여지없이 통일에 대한 올바른 논의는 실종되었고 종북·빨갱이 등의 왜곡된 이념논쟁으로 일관했다.

그래서 필자가 두려운 것은 그들이 말하는 통합이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특정집단의 지배를 정당화 하려는 말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