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스님께 밥을 얻어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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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께 밥을 얻어먹다
  • 소풍 기자
  • 승인 2012.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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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께 밥을 얻어먹다 

하산하는 바람 빠진 배낭들을 거슬러 오른다.
선거가 끝났다. 다 끝났다. 이제 무슨 결의가 필요한가.
그만 내려놓자는, 발등에 내려앉는 묵직한 한숨.

큰스님께선 뒷산을 오르실 겁니다.

뭐 하십니까. 그동안 편안하셨습니까.
처사님 이것 좀 들어줘요. 사람이 이리 반가운 건, 힘들 때인가 보이.
이게 다 뭡니까.
식구들 먹이지. 멀쩡한 산에 절을 떡 하니 지어 놓아서, 원래 주인들이 배를 곯아요.
적응을 해야지 이렇게 퍼주면, 오히려 혼자 살아가기, 힘들지 않을까요.
아이고, 내는 세 끼 다 처먹으며, 식구들 배고픈 거 모른 체 하면, 그것이 됩니까.
스님. 저 이번에 떨어졌습니다.
어디서요, 다친 데는 없고요. 다 났나보네. 시님한테 엄살떨러 왔는데, 시님이 받아주지도 않고 일만 시켰네. 남은 밥주고, 우리도 아랫마을 가서 묵읍시다. 시님이 사 줄게.
떨어졌어도 살아 있으니 고마운 거라 예. 전에 한 사흘 밥을 못 줬어요. 허리가 안 좋아서, 꿈쩍을 못하겠는지라. 행자를 시켰지만, 낯선 사람 주는 건 잘 안 묵더라고. 그래서 부축 받아 서리, 올라와 내가 주었지. 거기 말구, 이리 돌아 내려갑시다.
스님, 왜 돌아가십니까.
돌아간다고 밥집이 도망가나. 갈 곳이 분명하면 돌아가도 되지, 암, 돌아가면 밥맛이 더 좋아요.

공단 노동자들, 없는 사람들 속에서 한참을 굴렀다고 생각했는데, 선거는 또 다른 이야기였다.
그러나, 갈 곳이 분명하다면.
그렇다. 갈 곳이 분명하다면 돌아가도 된다.

스님 걸음을 못 쫓아가겠다.

 

* 시인 신승우(申承祐)
1972년 경기도 수원시에서 태어나 장안대학 응용미술과에서 공부했다.  군 제대 후 교통사고로 뇌병변 장애인이다. 2001년 ‘장애인 근로자 문화제’에서 시 부문 금상, 2004년 <솟대문학> 추천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경기도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부대표, 사단법인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경기 지부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경기도 장애인 극단 난다 대표, 수원새벽빛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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