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노블과 한국 만화의 다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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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노블과 한국 만화의 다양성
  • 윤 민 기자
  • 승인 2020.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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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과 '좁은 방' 그리고 '쥐'의 이야기

[뉴스피크] 

글로벌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는 한국 그래픽노블 

 

김금숙 작가의 풀 영역본 표지.  ⓒ 뉴스피크
김금숙 작가의 풀 영역본 표지. ⓒ 뉴스피크

지난 6월 한국문학번역원(원장 김사인)에서는 하나의 기쁜 소식을 전해주었다. 번역원의 지원을 받아 출간된 한국 그래픽 노블 2종이 미국과 프랑스의 주요 만화상 수상 후보에 올랐다는 것이다. 

먼저 김금숙 작가의 《풀》은 ‘만화계의 아카데미상’으로 알려진 아이스너 어워즈(Will Eisner Comic Industry Awards)에서 3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아이스너 어워즈(Will Eisner Comic Industry Awards)는 그래픽 노블이라는 장르의 선구자인 만화가 윌 아이스너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1988년에 제정된 상으로 미국 만화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으로 꼽힌다. 

김금숙 작가의 《풀》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였던 이옥선 할머니와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위안부 피해자들의 삶을 그림 작품으로, 2019년 프랑스 일간지 휴머니티가 선정하는 휴머니티 만화상을 수상한 바 있다. 영어로는 2019년 캐나다의 그래픽 노블 전문 출판사인 드론 앤드 쿼털리(Drawn & Quarterly)를 통해 출간되었고, 미국 뉴욕 타임스 지와 영국 가디언 지에서 뽑은 2019년 최고의 그래픽 노블 작품 목록에 포함되기도 했다. 

김홍모 작가의 좁은 방 프랑스어역본 표지. ⓒ 뉴스피크
김홍모 작가의 좁은 방 프랑스어역본 표지. ⓒ 뉴스피크

다음으로 민주화 운동과 학생운동을 다룬 작가의 자전적인 그래픽 노블인 김홍모 작가의 《좁은 방》(국문본: 보리출판사, 2018/ 프랑스어역본: 『Ma Vie en Prison』, 카나 출판사(KANA, 2020)) 역시 프랑스의 비평가와 저널리스트가 선정하는‘2020 ACBD  아시아 만화상(Prix Asie de la Critique)’최종 후보에 올랐다. ACBD 아시아만화상은 프랑스 만화비평가협회(ACBD)가 매년 최근 1년간 프랑스어로 출간된 아시아권 만화 작품 중 내용과 그림에 있어 가장 작품성이 뛰어난 작품에 수여하는 상이다. 2007년 상을 제정한 이후, 2008년에는 한국의 오영진 작가가 《남쪽 손님》으로 제2회 수상의 영예를 얻기도 하였다. 

한국의 만화가 유럽을 비롯한 글로벌 시장에서 대단한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지난 몇 년간의 성장은 놀라울 정도이고, 또 앞으로는 더욱 기대되는 게 현재의 상황이다. 더욱 의미 있는 것은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성공뿐만 아니라 예술적인 노력과 가치 역시 인정받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픽노블이란 일반적으로 문학작품처럼 깊이 있고 예술성 넘치는 작가주의 만화로 인식되고 있다. 다만, 그래픽노블 작가로 불리는 이들 중에는 이 표현을 마땅치 않게 생각하는 이들도 있고 (그냥 만화지 무슨 그래픽노블?). 일부 지역에서는 그저 만화를 칭하는 표현이기도 했다. 하지만 기존 만화와 구분하기 위해 소설적 상상력과 복잡한 스토리라인 그리고 회화적 표현력을 갖춘 만화를 우리는 그래픽노블이라 부르고 있다. 그런 특징이라면 특징, 찬사라면 찬사를 받는 그래픽노블 부분에서 우리의 만화가 당당히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사실 우리의 만화적 역량이 그만큼 성장할 것일까? 

 

그래픽노블의 보편적 가치는?  

 

프랑크푸르트국제도서전 한국만화마켓의 풍경.  ⓒ 뉴스피크
프랑크푸르트국제도서전 한국만화마켓의 풍경. ⓒ 뉴스피크

지난 3년간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지원하는 프랑크푸르트국제도서전 국제만화마켓에 참여할 수가 있었다. 

한국 전통의 하회탈 캐릭터에 바탕을 둔 만화와 케이툰에 연재했던 <화작작 조남남>, 곰툰에 연재됐던 <7번 국도의 아이들> 그리고 신규로 준비 중이던 몇 가지 동화와 만화를 들고 유럽 시장을 두드린 것이다. 

물론 계약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적극적인 관심을 보인 콘텐츠가 하나 있었다. 중국 양수대사의 이야기를 시나리오로 만들고, 그걸 캘리포니아아트스쿨 출신 건대 교수님이 그림을 그린 <화작작 조남남>이었다. 

엽서로 만들어진 화작작 조남남의 그림. 가장 인기가 있었고, 그래서 이틀만에 대부분의 기념엽서가 소진되었다. ⓒ 뉴스피크
엽서로 만들어진 화작작 조남남의 그림. 가장 인기가 있었고, 그래서 이틀만에 대부분의 기념엽서가 소진되었다. ⓒ 뉴스피크

 

도서전은 3일간 비즈니스 상담이 진행되는데,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한 프랑스 출판사 대표가 꼭 연락을 달라며 명함을 남기고 갔다. 영국 출신 기획자는 자신과 작업하는 출판사 편집자를 소개하는 명함을 남겨줬고, 프랑스의 한 에이전트 역시 관심을 보여줬다. 

중국 양수대사의 이야기를 웹툰으로 각색한 화작작 조남남. ⓒ 뉴스피크
중국 양수대사의 이야기를 웹툰으로 각색한 화작작 조남남. ⓒ 뉴스피크

비록 <화작작 조남남>의 스토리와 작화의 완성도는 다른 만화나 웹툰에 비해 상당히 높은 편이었지만, 당시부터 지금까지 유행하고 있으며 또 해외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한국 웹툰의 전형과는 많은 차이를 가지는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의 편집자들은 왜 이 만화에 그토록 관심을 가질까 하는 게 그들의 반응을 본 솔직한 의문이었다. 그리고 국내에서 해외 에이전시와의 상담과 한국의 웹툰을 자신의 나라와 유럽에 소개하려는 출판사이자 웹툰 플랫폼 담당자를 만나면서 하나둘씩 그 의문을 풀리기 시작했다. 

곰툰에서 연재되었던 '7번 국도의 아이들'.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와 한국의 역사와 풍경을 진하게 담고 있었고, 이야기와 그림의 질에 비해 해외 편집자의 관심을 끄는 데는 어려움을 겪었다.  ⓒ 뉴스피크
곰툰에서 연재되었던 '7번 국도의 아이들'.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와 한국의 역사와 풍경을 진하게 담고 있었고, 이야기와 그림의 질에 비해 해외 편집자의 관심을 끄는 데는 어려움을 겪었다. ⓒ 뉴스피크

비록 일본의 만화가 80년대부터 위력을 발휘하고, 한국의 웹툰이 2~3년 전부터 그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지만 프랑스 만화의 주된 독자는 40대이며, 그들은 아직까지 종이만화, 특히 우리가 ‘그래픽노블’이라 불리는 장르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프랑스에도 대규모 만화플랫폼이 생기고,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일본과 한국풍 만화나 웹툰에 열광하지만 기본적인 구매력과 소비력은 아직 40대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게 그곳 출판과 만화업계의 고민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 웹툰에 대한 수요와는 별도로 독특하면서도 완성도를 높은 작품에 관심을 놓지 않고 있는 것이다. 

다만, 그 기준에도 나름 엄격한 기준이 있다. 독특하다고 해서 모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가령 너무 한국적이거나, 이야기와 캐릭터가 지엽적이고 이해하기 힘들면 관심을 가지기 어렵다는 것이다. 지역적인 특징을 가지면서도 보편적인 스토리와 감동이 보장되면서, 또한 서사와 작화에서 남다른 특징이나 완성도를 가진 작품이라면 유럽 독자들에게 충분히 소개하고, 반응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미국과는 다른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만화시장의 형성과정에서 비롯된 바가 적지 않아 보인다.  

 

유럽, 만화의 부흥과 그래픽노블  

 

지난 기사에서 언급했듯이 본격적인 만화산업의 시작은 미국과 신문만화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만화라는 장르의 탄생은 유럽이 시작이라 할 수 있다. 

그중 스위스의 루돌프 토페르(1799~1846)를 만화형식을 개척해 유럽만화의 물고를 튼 선구자이며, 유럽에서 최초로 그림과 글을 함께 표현해 만화의 서술적 구조에 큰 공헌을 한 인물로 평가한다. 

Plate 13 of the book Histoire de Monsieur Cryptogame by Rodolphe Töpffer (1830) ⓒ Public Domain
Plate 13 of the book Histoire de Monsieur Cryptogame by Rodolphe Töpffer (1830) ⓒ Public Domain

토페르는 이러한 전통적인 그림이야기와는 다른 텍스트와 그림의 통합이라는 독자적인 서술방식을 발견하여, 한 페이지에 여러 개의 그림을 늘어놓고 각 칸에 문자를 넣었다. 

토페르의 작품은 완성된 지 몇 년 후에 발간되었는데, 뒤늦은 출판이었지만 큰 인기를 얻었다. 독일의 문호 괴테는, “이것은 정말 기묘하다. 재치와 영감으로 반짝이고 있다. 어떤 장면은 비길 데 없이 훌륭하다. 앞으로 좀 더 덜 가벼운 주제를 선택하고 좀 더 간결하게 된다면, 그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작품이 될 것이다.”라고까지 말했다고 한다. 

이런 전통이 이어진 유럽에서 만화는 한 번도 사회적 편견의 희생물이 된 적이 없었고, 프랑스에서는 20세기 초 이미 만화를 '제9의 예술'로 정의할 정도였다. 

이런 만화가 산업적으로 발전하는데 획기적인 역할은 한 게 1929년 조르조 레미가 창조한 벨기에 소년 ‘땡땡’이었다. (Tin Tin은 한국에서 땡땡이의 모험으로 소개되었다.) 

몇 년 전 애니메이션으로 새롭게 제작해 한국에서 개봉한 '틴틴의 모험'.  ⓒ 뉴스피크
몇 년 전 애니메이션으로 새롭게 제작해 한국에서 개봉한 '틴틴의 모험'. ⓒ 뉴스피크

땡땡이의 엄청난 성공이 중요한 것은 유럽에서 만화 제작의 경제적인 기본틀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먼저 정기간행 잡지로 ‘먼저 발행되어’ 신문판매소에 배포된 다음, 개별 이야기들이 선집 형태로 다시 발행되는 방식이었는데, 창작자들은 인세를 이중으로 받으면서 보다 나은 만화를 만들 수 있는 토대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유럽만화의 토대는 70년대 성인을 위한 만화의 유행과 유럽만화의 부흥을 불러왔다. 70년대 말 미국에서 등장한 그래픽노블이 유럽에서 전성기를 맞은 이유도 여기서 비롯된 게 아닐까 싶다. 특히, 전쟁과 전후복구의 시기 슈퍼 히어로물 위주였던 만화는 사회적, 정치적 변화의 시기를 맞아 깊은 주제의식과 소설적 상상력 그리고 그림의 완성도를 갖춘 예술작품으로 자신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이다. 

국내에서 발간된 아트 슈피겔만의 쥐(The Complete Maus) 표지. ⓒ 뉴스피크
국내에서 발간된 아트 슈피겔만의 쥐(The Complete Maus) 표지. ⓒ 뉴스피크

1992년 만화로는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미국 만화가 아트 슈피겔만의 『쥐(The Complete Maus)』는 그래픽노블의 등장과 사회적 인정을 알린 대표적인 작품이다.  

당시 아트 슈피겔만의 작업과 그 내용은 그래픽노블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고양이와 쥐가 된 인간 이야기 '쥐'. 아트 슈피겔만은 아버지의 삶에 있었던 주요한 변화들을 의인화된 인물로 표현하였다.  ⓒ 뉴스피크
고양이와 쥐가 된 인간 이야기 '쥐'. 아트 슈피겔만은 아버지의 삶에 있었던 주요한 변화들을 의인화된 인물로 표현하였다. ⓒ 뉴스피크

“1960년대, 한 미국 청년이 독일 다큐멘터리를 봤습니다. 학살 병이 번진 1940년대의 생산품이었습니다. 다큐멘터리는 게토의 좁은 공간을 떼 지어 다니는 유대인의 모습과 함께, 하수구를 지나는 한 무리의 쥐를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유대인은 쥐 혹은 인류의 해충이라는 말을 내보냈습니다. 

그 다큐멘터리를 보던 청년은 만화가였습니다. 그는 다큐멘터리에 나온 장면들을 통해 영감을 얻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아트 슈피겔만입니다. 우리에겐 그래픽 노블 《쥐》의 작가로 알려졌습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한 뒤 언더그라운드 만화계에서 활동했습니다. 미국의 언더그라운드 만화는 대항문화의 일종이었습니다. ... 

1960년대, 미국 사회는 혼란기였습니다. 베트남 전쟁, 존 에프 케네디 암살, 인종 차별 문제가 뒤섞였습니다. 미국 청년들은 사회 모순에 회의를 느꼈습니다. ... 

아트 슈피겔만도 인종차별에 대항하는 만화를 그리기 위해 고민했습니다. 당시 인종차별은 금지였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전히 흑인을 차별했습니다. 고양이와 쥐 같았습니다.” 《세계만화산책》강기린  

대표적인 그래픽노블 작가 아트 슈피겔만. ⓒ 퍼블릭도메인
대표적인 그래픽노블 작가 아트 슈피겔만. ⓒ 퍼블릭도메인

특히 의미 있는 건 이 만화가 작가의 경험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아트 슈피겔만은 홀로코스트 생존자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 블라덱은 그에게 이해불가였습니다. ... 

시간이 갈수록  선명해진 건, 아버지의 생각이 고정되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편견이었습니다. ... 그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습니다. ... 

슈피겔만이 이야기를 완성하는데 8년이 걸렸습니다. 그것은 아버지의 편견을 이해하는데 걸린 시간이었습니다. 

슈피겔만의 작품은 아우슈비츠 생존자의 증언이었으며, 동시에 편견을 가진 인간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퓰리처 수상작 후보에 올랐을 때, 심사위원들은 고민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회고록이라 해야 할지, 소설이라고 해야 할지 모호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특별상’의 영예를 안았습니다. 그것은 이 작품이 우리 삶에 남긴 메시지가 분명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슈피겔만의 쥐는 우리의 삶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우리 삶이 숱한 편견과 함께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종류의 차별이 그럴 겁니다. 우리는 여전히 인간과 인간이면서, 고양이와 쥐로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학살은, 정말 끝났을까요? 그리고 내 속에 당신 속에 우리들 속에 있는 편견들은 무엇일까요?” 《세계만화산책》강기린  

슈피겔만의 쥐는 우리의 삶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우리 삶이 숱한 편견과 함께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_ 강기린  ⓒ 뉴스피크
슈피겔만의 쥐는 우리의 삶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우리 삶이 숱한 편견과 함께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_ 강기린 ⓒ 뉴스피크

《풀》과 《좁은 방》 역시 우리의 역사와 그 과정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비록 모든 그래픽노블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글로벌시장에서 문학과 예술로 인정받는 이야기에는 이와 같은 깊은 주제의식과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정서를 함유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수상소식은 듣지 못했지만 두 작품이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 그 의미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우리의 이야기와 경험이 그들에게 보편적인 감동을 주고 있고, 이는 우리의 만화 창작과 다양성에 새로운 동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놀라운 아이디어와 참신한 소재로 무장한 웹툰과 만화가 너무 한쪽 방향과 비슷한 흐름으로만 흘러간다는 불만이 적지 않다. 또한 웹툰 작가를 꿈꾸는 이들은 넘쳐나지만 그 모든 기회와 위기가 개인의 것으로 맡겨진 상황이 안타깝기도 하다. 웹툰 플랫폼과 작가의 분쟁은 끊이지 않고, 많은 웹툰작가들이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으로 고통 받고 있음이 매년 발행되고 있는 <웹툰산업보고서>에서 끊임없이 지적되고 있다. 우리 웹툰과 만화가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고, 경제적 산업적으로 성공을 하고 있다면 유럽 초기 만화시장의 형성처럼 당연히 작가에게 더 많은 기회가 보장되는 시스템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안정된 환경과 가치의 인정은 좀 더 다양하고,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너무 대중적인 기호에만, 상업적인 성공에만 편승하게 된다면 그 문화의 저변은 얕아질 수밖에 없다. 

몇 년 전 한국 드라마가 동남아시아에서 인기를 끌던 바로 그때 베트남의 친구들을 한국에서 만나게 되었다. 그에게 한국 드라마를 물어보니 당장 보지 않는다는 대답이 들어왔다. 항상 내용과 캐릭터가 비슷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거기에 덧붙여졌다. 

그 장르를 풍성하게 하는 것은 다양하고 풍부한 시도에 비롯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기 위해서 작가는, 또는 예비작가는 우리 자신과 사회의 이야기에 더욱 귀를 기울이는 게 필요하다. 하지만 만화작가에게 그런 자세를 조언하는 사회문화적 풍토는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듯하다.

매주 새로운 웹툰의 영화화, 드라마화의 소식을 들으면서도, 다양한 이야기와 주제의식을 담고 있는 그래픽노블이 글로벌시장에서만큼 국내에서 대우받고 있다는 소식을 듣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만화산책》에서 계속 말하듯이, 만화는 풍자이며, 위로이지만 또한 사회이며 목소리이다. 그 목소리의 가치를 인정할 때 우리 만화와 웹툰산업은 진정한 글로벌문화산업으로 인정받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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