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에 관한 풍자와 묘사, 만화의 길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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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에 관한 풍자와 묘사, 만화의 길을 묻다
  • 윤민 기자
  • 승인 2020.06.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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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세폴리스], [톰 아저씨와 작은 에바], 그리고 '옐로키드'

[뉴스피크] [만화탐구생활 01]  

코로나19 이후 세상은 많이 달라지고 있다. 바깥출입은 점차 줄어들고, 문화생활의 중심은 집 거실이 되고 있다. 가장 대중적이면서도 특별한 문화행사인 영화제도 이제는 온라인으로 상영되고 있으니, 그저 넋 놓고 시간을 보내는 것도 현명하지 않은 듯하다. 이런 방구석 생활이 잠시가 아닌 중요한 생활방식이 된 듯 하니 뭔가 나만의 탐구생활이 필요해진 것이다. 

가장 먼저 킬링타임용으로 뒤적거리던 OTT를 좀 더 진지하게 살펴보았다. 그리고 가끔 이런 영화가 왜 여기에 있지 하는 놀라움과 반가움을 느끼게 했던 작품을 하나씩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만난 영화, 애니메이션이 <페르세폴리스>였다. 

페르세폴리스 애니메이션은 2007년 60회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수상했고, 같은 해 73회 뉴욕비평가협회상 애니메이션상을 수상하였다. ⓒ 뉴스피크
페르세폴리스 애니메이션은 2007년 60회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수상했고, 같은 해 73회 뉴욕비평가협회상 애니메이션상을 수상하였다. ⓒ 뉴스피크

이미 아는 이들은 아는 유명한 그래픽노블이자 국제영화제에서도 인정한 애니메이션이며 《세계만화산책(강기린)》을 통해 이미 만났던 작품이었다. 

<페르세폴리스>는 마르잔 사트라피가 살아온 이야기이다. 순수하고 활달했던 그녀의 삶은 평탄하지 않았던 이란의 현대사를 담고 있고, 만화는 아름다운 그림으로 소소하지만 슬픈 개인사를 역사 이야기로 보여주고 있다. 

특히 그녀는 오스트리아 유학을 마친 후 이란을 떠나 프랑스에 정착하면서 본인의 말처럼 ‘유럽에서는 이란 여자였고, 이란에서는 서양 여자’였기에, 그 시선은 묘하게 주관과 객관을 넘나들며 보는 이들을 공감하게 한다. 

페르세폴리스는 너무 아름다운 흑백의 그림이 이어진다. 거기서 주인공은 너무 천진난만하고, 세상을 너무 슬프다. ⓒ 뉴스피크
페르세폴리스는 너무 아름다운 흑백의 그림이 이어진다. 거기서 주인공은 너무 천진난만하고, 세상을 너무 슬프다. ⓒ 뉴스피크

《세계만화산책》에서 강기린 작가는 “마르잔은 작품을 통해 아픔과 맞서고자 했습니다. 그 의지가 희망을 꽃피게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겠지요. 그리고 영상, 그림에 자신의 이야기를 더욱 진하게 비춰냈습니다. 그래픽노블의 묘미는 이런데 있는 게 아닐까요? 마르잔은 이란에서 쫓겨난 신세지만, 이란인들의 희망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 시작은 ‘외면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페르세폴리스>가 새롭게 다가왔던 것은 《세계만화산책》을 선물 받은 한 소설가의 이야기가 문득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 해 대상문학상을 수상했던 그 작가는 당시 객주문학관에 입주해 있었다. 소설을 선물 받은 답례 차 영양으로 가는 길에 잠시 들러 새로 나온 책을 건네주었더니, 여기에 나와 있는 만화를 국내에 모두 소개하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덕담처럼 남겨주었다. 

물론 《세계만화산책》 중 유명한 것들은 국내에 대부분 소개되었다. <페르세폴리스>만 하더라도 출판사의 사정으로 절판되자 독자들의 요청에 의해 다른 출판사에서 다시 발간되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 국내에 소개되지 않거나, 이름조차 생소한 만화 역시 적지 않다. 

이란 혁명 시기의 혼란스러운 정치 상황과 이란-이라크 전쟁을 겪고, 유럽 사회에서 정체성을 찾지 못해 방황하면서도 유머와 존엄을 잃지 않으며 성장하는 주인공 마르지(마르잔 사트라피)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그래픽노블 페르세폴리스. ⓒ 뉴스피크
이란 혁명 시기의 혼란스러운 정치 상황과 이란-이라크 전쟁을 겪고, 유럽 사회에서 정체성을 찾지 못해 방황하면서도 유머와 존엄을 잃지 않으며 성장하는 주인공 마르지(마르잔 사트라피)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그래픽노블 페르세폴리스. ⓒ 뉴스피크

왜 소개되지 않은 것일까? 왜 소개할 생각을 못했을까? 

물론 상업적으로 비관적인 작품을 무리하면서까지 소개해야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만화란 재미있고, 또 대중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에는 어느 정도 공감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단지 그뿐이었을까? 

《세계만화산책》에 소개된 만화들은 시대적 풍경과 지역의 특징 그리고 만화의 보편성을 담고 있는 것들이다. 시대의 목소리이며, 세상에 대한 절묘한 풍자를 담고 있는 대표적인 만화들인데, 소개조차 되지 않았다는 것은 단지 개인의 무성의만을 탓할 수 없지 않을까? 지금 한국의 만화는, 그중 웹툰은 새로운 한류로 글로벌시장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으며, 만화(가)는 아이들에게 가장 선망 받는 직업군 중 하나가 되어 있다. 그렇지만 요즘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보면 혹시 우리가 한쪽만 보려고 하거나, 또는 보지 않으려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TV를 켜보자. 코로나19를 제외하고 세상 사람들의 가장 큰 반향과 행동을 이끌어내는 것은 바로 미국에 벌어진 조지 플로이드 George Floyd 사건이다. 강압적인 체포와 폭력에 의해 한 흑인남성이 사망했고, 이에 분노한 사람들이 거리로 뛰쳐나온 것이다. 역시 《세계만화산책》에 실린 한 편의 만화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시위 사진을 보며 애니메이션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그것은 1930년대에 제작된 미국 뮤지컬 애니메이션, <톰 아저씨와 작은 에바>였습니다. 이 작품은 노예제 반대자인 해리엇 비처스토의 소설, <톰 아저씨의 오두막>을 패러디한 것이었죠. ...

그러나 영상을 뜯어보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노래하는 노예들이 실려 오는 증기선, 목화밭에서 즐겁다는 듯 춤을 추는 노예, 경매에 나온 노예가 탭 댄스를 춰서 백인들에게 어필하는 장면은 분명 노예제로 고통 받은 이들에 대한 모욕이었습니다. 해리엇의 작품은 노예제의 비극을 나타내었지만, 이 애니메이션은 마치 노예들이 노예 생활을 즐긴 듯 묘사해 버린 겁니다. 당시는 노예해방이 된 지 50년 이상 지난 뒤였지만, 여전히 백인 우월주의로 가득 찬 시대였습니다. 겉만 멀쩡하고 속은 여전히 곪아있는 상황이었죠.” _ 《세계만화산책》 웃지 못 할 패러디 <톰 아저씨와 작은 에바>, 강기린   

1968년, 워너브라더스 카툰스를 인수한 미국 영화 배급사 UA(United Artists Corporation)는 대대적인 단속을 통해 센서드 일레븐(censored 11)을 공식 발표했다. 그것은 방영을 거부하고 팔지도 않을 열 한 개의 금지 만화 목록이었다. 당시 만연했던 인종차별적인 패러디와 만화에 대한 경고였다. ⓒ 뉴스피크
1968년, 워너브라더스 카툰스를 인수한 미국 영화 배급사 UA(United Artists Corporation)는 대대적인 단속을 통해 센서드 일레븐(censored 11)을 공식 발표했다. 그것은 방영을 거부하고 팔지도 않을 열 한 개의 금지 만화 목록이었다. 당시 만연했던 인종차별적인 패러디와 만화에 대한 경고였다. ⓒ 뉴스피크

여기서 말한 시위는 2013년 미국 플로리다에서 십 대 소년 마틴을 죽인 지머먼에 대한 재판 때문에 촉발된 것이다. 당시 재판은 주먹을 휘두른 ‘후드티를 입은 흑인’ 소년에게 총을 발사한 방범대원을 무죄로 판결했고 흑인사회는 분노해 거리로 뛰쳐나왔다. 

남북전쟁 이후, 노예해방 이후, 로드니 킹 이후, 마틴 이후 그리고 다시 조지 플로이드까지 미국에서는 인종 차별과 이에 대한 저항이 계속 되풀이되고 있다. 

그건 미국이라는 나라가 그 시작부터 인종과 문화의 용광로였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건너온 이주민들이 주인이 되고, 아프리카 대륙에서 새로운 이주민(?)을 받아들이고, 이어서 골드러시와 중국인을 비롯한 다양한 이주민이 도시에 안착하면서 미국이라는 나라의 골격이 만들어졌다. 지역과 인종, 계급과 계층의 갈등이 폭발했고 독립전쟁과 남북전쟁을 거치면서 갈등은 제도와 법으로 하나둘씩 조정되어갔지만 그 근본적인 원인의 치료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만화는 그 원인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에 좋은 매체였으며, 상처를 외면하지 않고, 또 어떤 기사나 연설보다 더 쉽고, 빠르고, 날카로운 감성으로 전달해왔다. 

<세계만화백과사전 World Encyclopedia of Cartoons> (1980)에서 모리스 혼은 “그 안에 완성된 하나의 생각을 갖고 있는 그림은 어떤 것이라도 만화라 불릴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만화의 이해를 저술한 스콧 맥클라우드는 “만화라고 불리는 예술형식(즉, 매체)은 어떤 생각이나 형상을 담는 그릇”이라고 했으며, 마샬 맥루한은 “만화는 정밀도가 낮은 즉, 정보량은 적지만 참가요청도가 높은 표현형태”라고 말했다.  

이런 만화의 본질에 대한 표현은 만화라는 매체가 그 시대를, 그들의 문화를 놀랍도록 자세하고도 재미있게 기록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번 인종차별에 대한 시위는 미국을 넘어 전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다. 그건 단지 백인 경찰이 한 명의 흑인에 가한 폭력과 차별이 아닌 모든 차별에 대한 반대를 전세계인들이 공감하고,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백인에 의한, 흑인에 의한 동양인의 차별 역시 함께 이야기되는 것은 그것 역시 인종차별이라는 같은 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 때문이다. 

다시 미국의 역사에서 한 편의 만화를 만나보자. 

1848년 캘리포니아에서 금광이 발견돼 '골드러시'가 시작된 이후 미국에는 이민러시도 동시에 시작됐다. 

‘19세기 미국은 남부 대농장 중심의 농업경제가 붕괴되고 제조업을 기반으로 산업화, 도시화가 진행되는 시기였다. 이민자도 급증하여 당시 뉴욕의 경우, 시민의 75%가 이민 출신이거나 이민2세였고, 70여 개의 언어가 난무하는 도시였다.’ 

_ <만화학개론> 권경민, 북코리아  

[호간의 뒷골목 Down Hogan’s Alley]과 옐로키드. 만화는 한 페이지의 2/3를 차지했다. 사실적인 상황묘사로 영어를 잘 모르던 이민자들도 이 만화를 보면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있었다고 한다. ⓒ 뉴스피크
[호간의 뒷골목 Down Hogan’s Alley]과 옐로키드. 만화는 한 페이지의 2/3를 차지했다. 사실적인 상황묘사로 영어를 잘 모르던 이민자들도 이 만화를 보면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있었다고 한다. ⓒ 뉴스피크

여러 인종이 섞여 살던 당시 뉴욕에서의 삶은 <갱스 오브 뉴욕>과 같은 영화에서 그려지듯 힘들고, 거칠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소통과 위로였을 것이다. 거기에 가장 대중적인 매체인 만화가 파고들었다. 《뉴욕월드》에 1895년부터 연재되던 <호간의 뒷골목 Down Hogan’s Alley>가 그것이었다. 

 

“두렵고, 문화도 낯설었습니다. 좋은 직업 구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습니다.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웠습니다. 이주민들은 이질감, 외로움을 느끼며 도시를 배회했습니다. 몸과 마음이 추우면 고향의 온기가 그리워지는 법입니다. 그래서 같은 민족끼리 모여 살았습니다. 그것이 슬럼이었습니다. 뭐어, 그곳을 지나는 사람에겐 그저 초라하고 가난한 동네였겠지만요. 

<호건의 앨리>는 바로 그 동네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만화 속에는 미국의 현실이 있었습니다. 그 속에서 어른 흉내를 내며 배회하는 슬럼가의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만화는 그 아이들의 시선을 통해 사회를 보았습니다. 대중은 만화에 열광했습니다.” 

_ 《세계만화산책》 노랑이 경고를 멈출 때, 강기린 

믹키 듀건은 만화의 조연으로 등장했다 빡빡 민 머리와 작은 몸에 물려입은 듯한 큰 잠옷을 걸치고 있었고, 당시 슬럼가의 가난한 아이였다. 만화가 컬러판이 되면서, 듀건의 잠옷은 노란색을 입었고, 그 색은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 뉴스피크
믹키 듀건은 만화의 조연으로 등장했다 빡빡 민 머리와 작은 몸에 물려입은 듯한 큰 잠옷을 걸치고 있었고, 당시 슬럼가의 가난한 아이였다. 만화가 컬러판이 되면서, 듀건의 잠옷은 노란색을 입었고, 그 색은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 뉴스피크

당시 《뉴욕월드》의 경영자였던, 그리고 이민자로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했던 조셉 플리처Joseph Pulizer는 파격적인 시도를 하였다. 일요일에는 쉬어야 한다는 기독교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만화섹션을 실은 일요 증보판을 만든 것이다. 그리고 이 작품에 등장하는 캐릭터인 ‘옐로 키드’는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고, 《뉴욕월드》는 1년 만에 판매 부스를 배로 늘릴 수 있었다. 사회를 풍자한 한 편의 만화에 미국 만화산업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그렇지만 풍자와 위로는 계속되지 못했다. 

《뉴욕저널》 대표이자, 갑부의 아들인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 William Randolph Herst는 《뉴욕월드》의 만화가인 리처드 펠튼 아웃코트를 스카웃해 자신의 신문에 연재를 하게 한 것이다. 《뉴욕월드》는 이에 다른 만화가를 고용해 옐로키드를 연재했다. 

“진흙탕 싸움의 시작이었습니다. 두 매체는 더 많은 페이지에 옐로우 키드를 담으려고 애썼습니다. 이른바 옐로우 키드 전투의 시작이었습니다. 이 전투는 당시의 저널리즘 경향을 적나라하게 드러냈습니다. 판매 부수에 연연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마치 오늘날의 기레기 현상과 닮아 있었습니다. <뉴욕 프레스>기자 어빈 워드먼은 이 현상을 옐로우키드 저널리즘이라 불렀습니다. 이것이 줄어 오늘날 우리가 아는 옐로우 저널리즘, 일명 황색 저널리즘이 되었습니다. 

<옐로우 키드>는 사회 풍자 만화였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결국 스스로 풍자 대상이 됐습니다. 저널리즘의 목표를 잊어서였습니다.” 

_ 《세계만화산책》 노랑이 경고를 멈출 때, 강기린 

 

미국은 아직 변화를 거부하고 있다. 아니 그들 국가의 시작이 여러 인종과 이민으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외면하고 있다. 외면은 결국 공멸을 가져옴을 미국의 역사를 기록한 한 편의 만화가 증언하고 있는 셈이다. 

이제 플로이드 추모는 단지 분노의 표출이 아니라 제도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아직도 인종차별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그렇지만 말로는 부끄러워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연일 SNS와 말로 자신의 생각을 표출하는 이도 있지만.) 

어쩌면 만화는 다시 그 안으로 시선을 옮겨야 할지 모른다. 아니, 그것이 태생부터 자신의 역할이기도 하다. 그를 통해 산업화가 되면서 지나치게 한쪽만을 바라보는 자신의 모습 또한 과감하게 풍자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일 듯하다. 좀 더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볼 수 있고, 또 보려고 하는 문화를 만드는 것, 어쩌면 산업으로서 세계에 진출해 외화를 벌어오는 것만큼 중요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게 소중한 ‘톰 아저씨’가 조롱거리가 되거나, 사람들을 위로했던 어린이의 시선을 어른들의 진흙탕 싸움으로 만드는 걸 막는 길이며, 우리 만화의 생명력이 오래 유지되는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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