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시아로 가는 길에 만난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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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로 가는 길에 만난 책들
  • 이철호 기자
  • 승인 2012.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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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은 간혹 방황을 부르고, 빈곤은 왜곡을 낳기도 한다

▲ 페르세폴리스의 유적지. 흔적만으로도 거대함이 느껴지는 곳이다. ⓒ 뉴스피크

작고, 외침이 많은 나라에 살아서인지, 위대한 영웅과 제국은 부러우면서도 또한 불편한 이름이기도 하다. 그래서 거대한 제국에 대한 이야기를 상당히 편협하게 받아들이는 면도 없지 않아 있는 듯하다. 이는 자연스럽게 그에 관한 지식의 빈곤을 가져오는데, 역사를 즐긴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가장 기본적인 상식을 잘못 말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이유이다.

한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이야기를 즐겨하는 이란에서는 상영이 금지된 ‘300’이라는 영화를 보자.

그곳에 나온 페르시아라는 나라는 거대한 ‘악’의 제국,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곳이다. 그래서 페르시아를 정복한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역사상 가장 매력적인 영웅으로 그려지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조금 달리 생각해보자. 영웅이 위대한 것은 사람들이 불가능이라는 생각했던 위업을 달성했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유명한 것은 거대한 정복전쟁의 성공 때문이었고, 그 성공은 다른 무엇도 아닌, 당시 서양 사람들이 알고 있는 가장 거대하고도 단단한 제국이었던 페르시아의 정복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거대한 제국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정복당한 야만적인 제국, 300이라는 영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정도에 머물러 있다.

페르시아 제국의 중흥기를 이끈 키루스 대제가 구약성서와 이민족에 인색한 그리스에서마저도 위대한 왕으로 불리고 있다는 것, 그리고 300의 스파르타 결사대가 5천의 지원군과 함께 했으며 전투는 탐색전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하루뿐이었다는 사실은 그저 부차적이고 알 필요가 없는 사실이 되어 버린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그 제국이 그렇게 야만적이었고, 정복당하고, 사라져야 하는 문명을 가졌던 것일까? 궁금증은 있지만 페르시아의 실체를 파악하기는 쉽지가 않다. 워낙 우리에게 번역된 자료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몇 가지 특색 있는 저작들이 소개되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옛날 사람들은 이렇게 살았다’ (이론과 실천)라는 책이다.

그 책 중 1장 아시아 편에는 ‘아하스베루스 왕이 잠 못 이룰 때’라는 절이 나오는데, 페르시아의 역사에 관한 이야기를 간단하고도 재미있게 정리해 놓았다.
서구의 역사 서술에 대한 의혹은 적지 않지만, 역사를 재미있게 서술하는 그들의 방식과 탐구만은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 아하스베루스 왕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다리우스 왕의 후계자로, 헤르도토스는 크세르크세스로 표기했다.
그 책의 저자는 페르세폴리스를 건설한 다리우스 왕을 “세계사에서 가장 위대한 지도자 중 하나로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전략가이자 왕이었으며, 경제를 잘 운영한 실무자로서 그런 인물은 두 번 다시 찾아볼 수 없었다." 라고 적고 있으며, 페르세폴리스가 발굴되고, 그 신비와 업적이 세상에 알려지는 과정을 비교적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놀라울 만큼 현대적이고 실용적인데다 단순하고도 명확하게 선이 드러나는 대단히 아름다운 건물”로 이루어진 도시로 페르세폴리스를 그린다.

▲ 다리우스 대왕이 전세계의 사신들을 맞는 장면이 새겨진 부조. 페르세폴리스에 새겨진 국가의 이름으로 당시 페르시아가 얼마나 거대한 제국이었는지 알 수 있다. ⓒ 뉴스피크

사실 역사책을 보면 키루스 대왕과 다리우스 대왕이 현대에도 존경할만한 지도자였음은 이론의 여지가 없지만, 크세르크세스 왕부터 페르시아 지도자에 대한 평가는 상당히 좋지 않다.

크세르크세스의 후계자대에 이르러 페르시아는 암살과 사치 등으로 멸망의 길을 걷는다는 게 일반적인 의견인 듯하다. 그러니 페르시아 제국의 이야기는 당연하게 알렉산더 대왕의 원정으로 이어진다.

“알렉산더 대왕은 이미 내부적으로 병들어 있는 나라를 살짝 건드리기만 하면 되었다. 그렇다 해도 기원전 333년 11월에 다리우스 3세가 3만-4만 명의 병력으로 알렉산더 대왕의 보병 2만 명과 기병 5000명을 상대로 이수스Issus 강에서 대치했던 때는 인류 역사상 숨 막히는 순간이었다. … 전투가 끝났을 때 알렉산더군의 손실은 450명이었는데 반해 페르시아군의 손실은 그 10배였다. 아마 그보다 많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스인들은 페르시아 군이 60만 명 중 11만 명을 잃었다고 전하고 있는데, 이는 터무니없이 과장한 것이다. …”
 
페르시아에 좀 더 구체적으로 알고 싶다면, 두껍고 조금 부담스럽지만 그만큼 친절하고, 상세한 기록을 담고 있는 ‘임페리움’이라는 책을 보는 게 좋을 것이다. 
 
 “후세의 페르시아 인들은 위대한 왕들이 솔선수범한 예를 따라 황량한 대지 곳곳에 새로운 세계를 건설했다. 오늘날에는 뙤약볕 아래 먼지만 폴폴 날리고 있지만, 페르시아 대왕들이 다스리던 시대에는 그곳에 갖가지 작물과 나무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관개시설이 이루어진 정원에는 유리처럼 투명한 물이 수로를 따라 흘러들어왔다. 농부들은 세심하게 설계된 물길을 이용해서 소중한 물을 밭으로 끌어들였다. … 지칠 줄 모르는 노동과 잘 조직된 행정 체계가 있었기에 가능한 기적이었다. … 성공적인 수자원 관리의 비밀은 바로 지하 운하였다. 약간 경사지게 만든 수 킬로미터 길이의 지하 운하를 통해 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을 메마른 평야로 끌어들였던 것이다. …”

“페르세폴리스의 행정 문서 보관소를 찾아낸 셈이다. 점토판들에는 식량을 배분하는 문제, 가축 떼 관리 문제, 전국에 퍼져 있는 인부들의 숙식 문제에 관한 내용들이 상세히 적혀 있었다. 고고학자들은 이 점토판들이 페르시아 제국의 각 지방에서 작성한 것이며 페르세폴리스에 있는 중앙 행정 당국으로 보내진 영수증이나 지출 명세서인 것으로 추정했다. … 이러한 단순한 행정 문서들의 발견은 그간 고대 그리스 작가들의 일부 서술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선전술이었는지를 백일하에 드러내 준다.

페르시아 대제국은 내부적으로 무척 평화롭고 잘 조직화된 행정국가였다. … 확고한 체계를 갖춘 현대풍의 관료 제도가 페르시아 제국을 지배했다.”

▲ 이란의 야즈드에는 거대한 바람탑과 물이 나오는 정원이 있다. 페르시아의 과학은 당시 이미 상당한 수준에 올라 있었다고 한다. ⓒ 뉴스피크

정말 대단한 고대의 제국이 우리의 지식세계에서 놀랄 만큼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우리는 이 고대 제국으로 가는 변변한 가이드북조차 없으니 말이다. 하다못해 제국이 사라지는 그 순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조차 알기가 쉽지 않다.
 
세상의 모든 역사 고대편 2 (이론과 실천) 70장 알렉산더와 후계자들의 전쟁 편을 보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 나온다.

“알렉산더의 부하들은 승승장구하며 처음으로 수사에 들이닥쳤다. 이어 페르세폴리스에 입성했다. 이곳에서 알렉산더는 그리스 전쟁 포로들을 보게 된다. 그중 일부는 수십 년 전 전쟁 때 포로로 잡힌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모두 노예 신세였다. 페르시아 주인들은 이들이 달아나는 것을 막기 위해 일을 하는 데 꼭 필요하지 않은 팔이나 다리는 모두 잘라버렸다. 이에 격분한 알렉산더는 도시 전체를 약탈하라고 명했다. 부하들은 도시를 불태우고, 주민들을 죽이고, 노예로 삼았다. … 도시는 황폐화되었고, 다리우스의 궁전들도 불탔다.”

이게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사실이다. 페르시아는 잔혹한, 어떤 의미에서 야만의 제국이었고, 정의로운 그리스 군에 의해 불타 사라진 것이다. 이는 다음daum 백과사전을 검색해보면 더욱 명확해진다.  
 
“왕가의 방계 혈족에 속하는 다리우스 대왕은 키루스 대왕이 묻혀 있는 파사르가다이를 떠나 페르세폴리스를 페르시아의 수도로 삼았다. 그러나 산이 많은 외딴 지역에 세워진 페르세폴리스는 왕이 거처하기에 불편했기 때문에 왕은 주로 봄에만 이곳을 찾았다. 그리고 아케메네스 왕조의 실제 행정은 수사나 바빌론 또는 엑바타나에서 이루어졌다. 그 때문에 페르세폴리스는 이 아시아를 침략한 뒤에야 비로소 그리스인들에게 알려졌다. BC 330년에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이 도시를 약탈하고 크세르크세스 왕의 궁전을 불태웠는데, 이것은 아마 페르시아에 대한 그리스의 보복이 마침내 끝났다는 것을 상징하는 행위였을 것이다.”

이런 역사적 저작물 덕분에 몇 안 되는 이란 기행문 역시 페르세폴리스를 방문하면 불타버린 옛 도시의 자취를 아쉬워하는 감상을 남기곤 한다. 

그런데 ‘임페리움’을 보면 다음과 같은 서술이 나온다. 
 
“기원전 330년 1월, 그의 적 알렉산드로스는 페르시아 세계제국의 중심지 페르세폴리스에 당도했다. … 알렉산드로스는 접수한 적의 심장부에서 신년 연회를 열며 페르시아 귀족들로부터 충성할 것을 맹세 받았다.
고대 저술가들은 활활 타오르는 페르세폴리스의 모습을 기술하며 페르시아의 종말을 알렸다. 아리아노스는 현장 목격자 프톨레마이오스의 전언을 토대로 알렉산드로스가 아테네의 파괴에 대한 보복으로 페르세폴리스를 깡그리 불태워 버리라고 명령했다고 한다. …
그런데 페르세폴리스의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 깜짝 놀랄 만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 도시는 단 한 번도 불에 타서 무너져 내린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 이란 고고학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알렉산드로의 침공 직후 약탈과 관련해서 저질러진 몇몇 개별적인 화재 흔적밖에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임페리움 : 제국-권력의 오만과 몰락 (도서출판 말글빛냄) 

 
과연 무엇이 진실일까? 라는 질문은 우리에게 너무 버거운 것이다. 다만, 다양한 주장이 반영되지 않은 역사지식은 어쩌면 무지를 칭송하는 것보다 더욱 해로운 것이 아닐까?
사실 슬픈 역사의 대다수는 오해와 왜곡에서 비롯되지 않았던가.

결국 책은 정말 많이 나오고, 서점에서 자료를 찾기 쉽지 않을 정도로 많은 종류의 역사책이 꽂혀 있지만, 우리 지식세계의 빈곤을 해소하기에는 아직도 한없이 부족함을 느낀다.

 

▲ 페르시아로 가는 길에 만나는 세 권의 책. <임폐리움>, <옛날 사람들은 이렇게 살았다>, <세상의 모든 역사 고대편2> 특히 임페리움은 우리가 알고 있는 제국에 관한 새롭고도, 세세한 사실을 알려준다. ⓒ 뉴스피크

세상의 모든 역사 고대편2 
수잔 와이즈 바우어 지음
이광일 옮김
2007년 10월 발간, 29,000원
이론과 실천 
 
옛날 사람들은 이렇게 살았다.
이바르 리스너 지음
김동수 옮김
2006년 5월 발간
솔 출판사
 
임페리움
한스 크리스티안 후프 외 지음, 박종대 옮김
2005년 1월 발행
28,000원
말글빛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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