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시가족여성회관, 다산 유배지 ‘역사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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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시가족여성회관, 다산 유배지 ‘역사탐방’
  • 이민우 기자
  • 승인 2017.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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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수원의 뿌리를 찾는 수원학 여행 - 다산의 유배지를 찾아서’
▲ 수원시가족여성회관(관장 황의숙)은 지난 3월 30일(목) ‘2017년 수원의 뿌리를 찾는 수원학 여행 - 다산의 유배지를 찾아서’라는 주제로‘2017년 1차 문화역사탐방’을 다녀왔다. 사진은 박천우 장안대학교 교수가 다산초당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는 모습. ⓒ 뉴스피크

[뉴스피크] 수원시가족여성회관(관장 황의숙)은 지난 3월 30일(목) 회관 회원과 시민 등 4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전남 강진 일대로 ‘2017년 1차 문화역사탐방’을 다녀왔다.

이번 문화역사탐방은 ‘2017년 수원의 뿌리를 찾는 수원학 여행 - 다산의 유배지를 찾아서’라는 주제로 마련됐다. 다산 정약용은 정조대왕의 개혁정치에 적극 동참했으며,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성곽 건출물로 꼽히는 수원화성을 설계한 인물이다.

탐방 참가자들은 박천우 교수(장안대학교)의 안내로 다산초당, 백련사 대웅보전, 백운동 별서정원, 사의재를 찾아가 정약용의 삶과 얽힌 사연들을 듣고, 수원화성의 역사적 의미도 되새길 수 있는 뜻 깊은 시간을 보냈다. 또한 영랑 김윤식 생가, 무위사 극락보전, 월남사지 삼층석탑도 방문했다.

박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다산 정약용은 천주교 탄압이었던 신유박해와 잇따라 터진 ‘황사영 백서사건’에 연루돼 1801년 전남 강진으로 유배됐다.

다산은 강진읍 동문 밖 주막의 방 한 칸에 사의재(四宜齋)란 당호를 붙이고 1805년까지 4년간 지냈다. 다산은 1801년 ‘솔피’란 시를 썼는데, 고래(정조)가 솔피떼(노론)에게 죽임(독살)당했음을 우화처럼 표현한 시다. 1803년에는 ‘애절양’이란 시를 통해 군정문란으로 핍박받는 백성들의 처참한 삶을 담아냈다.

다산은 이후 고성사 보은산방, 제자 이학래의 집에 살았으며, 1808년 봄부터 1818년 9월 유배생활을 마칠 때까지는 다산초당에서 지냈다. 이 시기에 다산은 그 유명한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을 비롯해 5백여권 방대한 저서를 남겼다.

▲ 수원시가족여성회관(관장 황의숙)은 지난 3월 30일(목) ‘2017년 수원의 뿌리를 찾는 수원학 여행 - 다산의 유배지를 찾아서’라는 주제로‘2017년 1차 문화역사탐방’을 다녀왔다. 사진은 박천우 장안대학교 교수가 백련사 대웅보전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 ⓒ 뉴스피크
유배생활 중 다산은 1805년 백련사의 혜장선사를 처음 만났고, 이후 활발히 교류했다. 주역에 통달하고 유학도 깊은 경지에 이르렀던 혜장은 나이가 10살 위인 다산을 스승 겸 글벗으로 여겼고, 서로 학문을 나누었다. 혜장은 다산에게 유교 경전을 배웠고, 대신 불경과 다도의 길을 열어준 셈이다.

혜장은 제자인 초의(훗날 <동다송>을 쓴 초의선사)를 다산에게 소개하기도 했다. 다산 보다 24살 아래였던 초의는 1809년부터 다산초당을 찾아 유학과 서화를 배웠고, 차도 나누며 인연을 이어갔다.

이날 가족여성회관이 방문한 다산초당에서 백련사로 넘어가는 800m 오솔길은 지금도 다산과 혜장의 발자국이 살아 숨 쉬는 듯했으며, 동백나무숲 풍광이 일품이었다. 백련사 대웅보전 현판은 동국진체를 완성한 원교 이광사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백운동 별서정원도 찾았다. 월출산 옥판봉 남쪽 자락에 자리한 전통 정원인 백운동 별서정원은 담양의 소쇄원·명옥헌·식영정, 강진의 다산초당, 해남의 일지암, 남원의 광한루원, 보길도의 부용정 원림과 더불어 호남 전통 원림의 원형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이다.

백운동 별서정원은 입산조인 이담로가 중년에 조성한 이후 12대에 걸쳐 생활공간으로 쓰였다. 특히 이담로의 증손자인 이의경은 사도세자(정조대왕의 아버지)의 스승을 지낸 인물이다. 사도세자는 사부 이의경에게 시와 글을 보내 남다른 존경의 뜻을 표하기도 했다.

다산은 별서정원을 방문해 백운동 12경 연작시로 아름다운 자연을 노래했고, 초의선사는 ‘백운동도’와 ‘다산도’를 그려 다산의 친필 시와 합첩한 <백운첩>을 남겼다.

강진 읍내에 있는 영랑 김윤식 생가도 찾았다. 김영랑 시인은 일제강점기 때 강진의 3.1만세 운동을 주도했으며, 신사참배와 창씨개명을 거부했다. 전라도 사투리가 어우러진 향토성 짙은 영랑의 시는 강진의 자연경관과 생가의 풍광 속에서 탄생했다고 박 교수는 설명했다.
 
무위사 극락보전(국보 제13호)은 치장을 부리지 않아 단정하고 소박한 아름다움이 돋보였다. 조선 초기 목조건축물로 맞배지붕 겹처마 주심포집이다.

월남사지 삼층석탑(보물 제298호)은 월출산을 배경으로 고고한 자태를 자랑하는 명물인데, 현재 보존을 위한 보수 중이라 실물을 제대로 살펴 볼 수 없었다. 월남사지 일대는 ‘문화재 조사 중’이라 출입이 제한돼 있다.

한편, 가족여성회관은 이번 ‘다산 유배지’를 시작으로 분기별로 1회씩 총 4회에 걸쳐 ‘2017년 수원의 뿌리를 찾는 수원학 여행’을 운영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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