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피크] ‘독립운동가 필동 임면수 선생 기념사업추진위원회’ 발족식이 26일 오후 6시 수원시 팔달구 소재 수원화성박물관 영상실에서 열렸다.
임면수(1874~1930) 선생은 수원지역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하고 삼일학교(현 삼일중·고교) 및 만주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한 독립운동가다.
평생을 독립운동을 위해 희생했는데도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다가 광복 70주년에 즈음해 경기르네상스포럼과 수원문화원, 지역 사학계, 사회 시민단체 등을 통해 재조명이 추진됐다.
임면수 선생 기념사업 본격추진을 알리는 이날 행사에는 이찬열(수원시갑,장안구)·박광온(수원시정,영통구) 국회의원을 비롯해 서철 삼일학원 이사장, 염상덕 수원시 문화원장, 이영수 광복회 경기도지회 수원시지회장, 지역 언론사 관계자, 시민 등 200여명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식전행사로 해금 등 국악악기 반주아래 ‘독립군가’와 ‘빼앗긴들에도 봄은 오는가’가 연주됐고, 윤동주 시인의 ‘자화상’과 ‘광복군 아리랑’이 시낭송을 통해 전달되며 행사장을 숙연케 했다.
본 행사에 앞서 이영수 광복회 수원시지회장은 축사를 통해 “수원출신의 독립운동가 임면수 선생을 발굴, 조명하는 역사적인 문턱에 와 있다”면서 “오늘 행사에 참석한 여러분들이 회원이 되어 역사적인 역할의 중심에 서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어 수원대학교 박환 교수가 본행사 특강을 통해 ‘필동 임면수 선생의 발자취’를 되짚었다.
박 교수는 “필동 선생은 수원의 대표적 사립학교인 삼일학교를 세운 근대교육자이자 1907년 수원의 국채보상운동을 이끈 자강운동의 선각자였다”고 칭송하고,
“나라가 망한 후에도 만주로 망명해 양성중학교 교장을 지내면서 독립군을 길러내고, 부민사 결사대 대원으로 항일 무장 투쟁을 이끈 독립운동가 로 모범적인 삶을 살았던 수원을 대표하는 위대한 인물이다”라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필동 선생이 구한말 수원지역을 중심으로 계몽운동을 전개한 점과 수원출신으로 유일무이하게 만주에서 활발하게 항일운동을 전개한 점 등은 몇 번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강조하고, “학계를 비롯한 수원지역 사회에서도 주목을 받지 못한 점은 통탄할 노릇”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박 교수는 “필동 임면수 선생을 비롯해 3·1운동 민족대표 48인중 한분인 김세환(1888~1945), 3·1 만세운동을 주도한 김향화(1897~?), 3·1 만세시위 중 검거된 이현경(1899~?), 경기도의 유관순으로 통했던 이선경(1902~1921)씨 등 후손들이 이름조차 모르고 있는 수원출신 독립 운동가들이 많다”면서 “이는 학계의 직무유기로, 반드시 재조명 되야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임면수 선생 기념사업추진위원회’는 발족식을 통해 그동안 추진한 경과와 사업계획을 보고하고, 임면수에 대한 역사적 연구와 기념사업을 본격 추진함은 물론, 그 동안 저평가 됐던 근대 인물들에 대한 발굴·재조명 작업을 병행할 계획이라고 강한 의지를 밝혔다.
염상덕 기념사업추진위원회 공동대표는 “경기르네상스포럼과 수원문화원, 사학계를 주축으로 수원지역 시민사회단체가 뜻을 모아 시민모금활동 등을 벌여 오는 8?15 광복절에 임면수 선생의 동상을 건립할 계획이다”며 “광복 70주년을 기념해 의미있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만큼, 수원시민의 많은 참여를 바란다”고 희망했다.
한편 ‘독립운동가 필동 임면수(1874~1930) 선생은 수원 출신으로 서울 상동청년학원을 수료한 후 고향으로 내려와 사재를 털어 지금의 삼일학교를 설립해 교육계몽 활동을 펼쳤다.
또 수원지역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했으며 1911년 만주로 망명해 신흥무관학교 교장으로 독립군을 양성했다.
1921년 임면수는 만주 지린에서 체포돼 옥고를 치르고 반신불수로 석방, 1930년 고문 후유증으로 수원에서 사망한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돼 현재 대전 국립현충원에 안장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