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무와 『한위총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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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무와 『한위총서』
  • 김희만(헌책장서가)
  • 승인 2014.03.04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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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만 - ‘헌책방의 인문학’(1)

얼마 전부터 세간에서는 인문학이 위기라고들 한다. 많은 분들이 인문학을 제대로 찾아서 그런지, 위기라기보다는 책의 홍수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욱 어울릴 듯하다. 진정한 인문학을 만나기 위해서는 그 근원을 찾아볼 필요가 제기되는 요즈음이다.

또한 책 읽는 소리를 들어본 적도 언제인지 알 수 없다. 아마도 듣기는 어렵고 보기는 더더욱 어려운 게 현실이다. 예전에는 책을 눈으로 읽기보다는 입으로 소리를 내어서 읽었다. 어디서 구입했는지 기억에는 없지만, 손 가까이 잡을 수 있는 정민의 『책 읽는 소리』는 옛 글 속에 떠오르는 인물의 내면 풍경을 만날 수 있어서 가끔 뒤적여 본다.

『책 읽는 소리』를 어느 날 다시 읽으면서 새로운 단견(短見)을 얻었으니, 그것은 다름 아닌 이덕무와 『한위총서(漢魏叢書)』에 얽힌 짤막한 내용의 에피소드다. 그걸 여기서 소개할까 한다. 내가 사는 곳 주변에는 몇 개의 헌책방이 있다. 가끔 바람을 쐬러 나가면 헌책방의 신간(?)을 기대하면서 둘러보는 것이 하나의 버릇처럼 된 지 오래다.

▲ 남문서점에서 구입한 명각본(明刻本) 『한위총서』. 중화민국 59년(1970)에 간행된 책이다. ⓒ 뉴스피크

 

그날도 서점의 이 책 저책을 두리번거리다가 제법 두툼한 책과 마주하게 되었다. 엄두가 나질 않았다. 상하 두 권에 자그마치 2천 여 페이지에 달하는 깨알 같은 글을 보면서 자괴감이 엄습하였음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이리저리 뒤적이다가 그만 내려놓았다. 임자가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주변의 다른 서적을 곁눈질했지만, 아프지 않는 병이 생겼다. 다시 만지게 되었고, 결국 뿌듯한 소유욕에 가볍게 집으로 향한 적이 있다.

실학자 가운데 많은 저작으로 우리에게 익숙해진 이덕무(1741~1793)는 스스로 ‘책만 읽는 바보’라는 뜻으로 “간서치(看書痴)”라 하였다는데, 그가 책을 읽는 이유를 들어본다.

“선비가 한가로이 지내며 이렇다 할 일도 없을 때, 책을 읽지 않는다면 무엇을 하겠는가? 책을 읽지 않는다면 작게는 쿨쿨 잠을 자거나 바둑이나 장기를 두게 되고, 크게는 남을 비방하거나 재물과 여색에 힘쓰게 된다. 아아! 그래서 나는 책을 읽을 뿐이다.”

이와 같은 삶을 현 시대에는 그대로 구가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우리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는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다. 이 시대에 누구나 알아야 할 기초 소양이라고 하는 인문학, 즉 문학, 역사, 철학을 삶에서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다면 그 또한 행복하지 않겠는가?

이덕무의 글 가운데 하루 일과로 책을 읽으면 네 가지가 유익하다고 하는데 그 구절을 잠시 들어보자.

“첫째, 조금 배고플 때 책을 읽으면 소리가 낭랑해져서 책 속에 담긴 이치와 취지를 잘 맛보게 되니 배고픔을 깨닫지 못하게 된다. 둘째, 조금 추울 때 책을 읽으면 기운이 소리를 따라 몸 안으로 흘러 들어와 편안해져서 추위도 잊을 수 있게 된다. 셋째, 근심 걱정으로 마음이 괴로울 때 책을 읽으면 눈은 글자와 함께 하나가 되고 마음은 이치와 더불어 모이게 되니, 천만 가지 생각이 일시에 사라져버린다. 넷째, 기침이 심할 때 책을 읽으면 기운이 통하여 막히는 것이 없게 되니 기침 소리가 순식간에 그쳐버린다.”

이보다 더 긍정일 수는 없다. 이런 사고와 행동은 자신이 처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피나는  의지의 소산이라고 하겠다. 현실을 회피하지 않고 묵묵히 불편한 삶을 긍정하면서 만들어낸 이덕무의 인문학은 아직도 우리 앞에 살아 있는 현실이다. 이러한 이덕무에게도 자그마한 바람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한위총서』와의 인연이다.

이 『한위총서』에 대한 사연은 이덕무가 윤가기(尹可基)라는 친구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시작된다.  “보내는 계집종이 비록 약하지만 책 두질쯤은 맡길 만하니, 매화감실 위에 놓아둔 『한위총서』를 꺼내 보내주십시오. 사람이 굶주리면 돈을 내어 이(벌레)를 먹이고, 선비가 책을 읽고 싶으면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책일지라도 찾아서 빌려주는 것이 사대부의 일입니다.”라고 간절하게 애원하고 있다. 문제는 그 친구 또한 이 책이 보고 싶어서 다른 이에게 빌려왔던 것인데, 이를 다시 빌려달라는 ‘간서치’의 절절함은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 형용하기 어렵다.

사실 이덕무가 그토록 간절하게 보기를 원했던 『한위총서』는 옛날 한적(漢籍)이었지만, 지금 내 곁에 있는 책은 그 판본을 축소하여 영인한 것이다. 진짜는 아닌데 그렇다고 가짜도 아니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중국의 한과 위나라의 서책에서 귀중하다고 생각되는 내용, 이름하여 문사철이 그대로 담긴 인문학의 보고이다. 경씨역전(京氏易傳), 주역약례(周易略例) 등으로부터 시작하여 논형(論衡)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양의 내용을 표제어를 통해 자유롭게 접속할 수 있다. 이 책에 담겨진 내용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삼국지』나 『삼국사기』 등의 역사와 그 맥락을 같이 하고 있는데, 이 총서는 이빨 빠진 우리의 과거를 재구성하는데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이덕무가 보낸 편지에서 묻어나는 그 애절함이 느껴지는 『한위총서』를 가까이 두게 되어 한편으로는 뿌듯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쿨쿨 잠을 자거나 남을 비방하면서 소일하고 있지나 않은지 적잖이 고민하게 한다. 이토록 귀중한 헌책(?)을 구한 것도 고마운 일이지만, 책이 있는데도 열심히 보지 않는다면 이덕무와 윤가기에게 면목이 서지 않을 테니, 오늘부터 부지런히 책 읽는 소리를 내어야 하겠다. 몸을 좌우로 흔들면서 말이다.   


* 필자 소개
김희만 : 한국사를 전공하였으며, 특히 정치사회사에 관심이 많다. 역사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헌책을 좋아하여 시간이 날 때마다 책방을 뒤지고 다니는 헌책장서가라고 할 수 있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만나는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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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문학 논설위원 2014-03-07 21:30:17
잘 읽었습니다. 다음 글은 어떤 책일까, 궁금해집니다.

나그네 2014-03-04 08:49:02
좋은글 즐감 했습니다.. 두번째 글이 기다려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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