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항쟁 흑백·컬러 사진 44점 35년만에 공개...역사적 고증 가치 높아
“우리가 진화시킨 민주주의, 후배들 통해 또 다른 모습으로 진화하길”
“난 잘라내기만 한다"...사진 왜곡하지 않는 ‘역사 기록의 중요성’ 강조
“수원시 지역 민주화운동을 사진으로 기록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수원지역 6월 민주항쟁 사진을 35년 만에 공개한 보도사진가 김경수 발리볼코리아닷컴 대표의 말이다.
김경수 기자는 1987년 6.10민주화 항쟁(6월 항쟁) 35주년을 맞아 ‘수원의 민주화 6월 항쟁, 사진으로 본 역사’ 사진전시회를 열고 있다. 사진전은 (사)수원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주최하고 수원문화재단, 민주화추진협의회, 홍재언론인협회, 발리볼코리아닷컴이 후원해 오는 사진전은7월 2일까지 수원시 장안구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111CM 창의예술실험실에서 열린다.
사진전에서 만날 수 있는 작품들은 김경수 기자가 대학생이던 1987년 6월 수원지역에서 일어난 민주화운동을 찍은 사진들이다. 35년간 미공개했던 총 44점(흑백·컬러)의 사진인데, 수원지역 민주화 운동을 고증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주목받고 있다.
고문 살인 은폐 조작 규탄 및 호헌철폐 평화 대행진(6월 10일), 수원 팔달문~중동사거리 집회(6월 16일), 수원 팔달문 지동시장 입구에서 열린 살인 최루탄 추방 대회(6월 18일), 수원 북수동 성당과 수원 팔달문 부근, 수원역 광장 등지에서 열린 민주화를 위한 특별미사 및 평화 대행진(6월 26일), 수원지역 대학생 대표자협의회(8월 16~19일) 사진이다.
6월 항쟁은 민주주의를 탄압한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에 맞서 학생, 노동자, 종교인, 시민들이 벌인 민주화 운동이다. 1987년 초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전두환의 4.13 호헌조치로 시민들은 전국 곳곳에서 "호헌철폐, 직선제 쟁취!"를 외쳤다. 6월 9일 연세대에서 이한열 학생이 경찰의 최루탄에 맞아 쓰러지자, 6월 10일 서울시청 광장 등 전국에서 민주화 운동이 들불처럼 일어났다.
“역사의식을 가지고 기록을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위험을 감내하며 집회 현장 곳곳을 누비며 사진을 찍었다는 김경수 기자
김경수 기자는 “우리가 진화시킨 민주주의가 후배들을 통해 또 다른 모습으로 진화하길 바란다”며 역사적 고증을 위해 자신이 소장한 사진을 지속해서 공개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수원에서 초·중·고를 졸업한 김 기자는 1983년 서울예전 사진과에 입학해 1988년 2월 졸업했다. 김 기자는 KBS 올림픽방송본부, 국제신문, 코리아헤럴드, 스포츠전문 굿데이신문 등에서 사진기자로 활동했다. 한국사진기자협회 사무차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2014년 인터넷 매체 발리볼코리아닷컴을 창간하고 발행인 겸 편집인이면서도 현장을 뛰는 현역 기자다.
아래는 김경수 지자와의 일문일답.
▶ 수원지역 6월항쟁 사진을 35년 만에 공개했다. 이번 사진전의 의미와 특징은?
수원에서 5·18 이후에 내가 본 최초의 대규모 시위였고 수원지역에서 펼쳐진 6월 항쟁은 영원히 남겨져야 할 역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애정을 갖고 찍었다. 역사의식을 가지고 기록을 해놓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특히 26일 수원 북수동 성당과 수원 팔달문 부근, 수원역 광장 등지에서 열린 '민주화를 위한 특별미사 및 평화 대행진'은 종교계까지 모여 대규모 집회를 펼쳤기에 더 의미가 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컬러로 찍어 오래 보존하고 싶었다. 흑백은 오래 보관될수록 사진 감각이 떨어진다. 네거티브가 아닌 슬라이드 필름으로 찍었다. 50년 이후에도 컬러가 살아있으며 현장감이 더 있기 때문이다.
▶ 김경수 대표가 기억하는 1987년 수원의 6월 항쟁은?
수원에서 펼쳐진 6월 항쟁은 산발적이었다 대학생이나 시민들이 모이기만 하면 경찰들이 접근했기 때문이다.
산발적으로 진행된 항쟁은 시간이 지날수록 대규모 집회로 이어졌다. 수원 팔달문 지동시장 입구에서 열린 살인 최루탄 추방 대회는 통일민주당이 합세하면서 학생, 시민들과 함께 집회했다.
역전에서 화성역(못골시장), 성 빈센트병원 입구까지 쫓겨갔다.
▶ 위험을 감수하고 찍은 것으로 알고 있다.
수원 팔달문~중동사거리 집회가 열린 6월 16일에 잡혀갔다. 집회 현장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경찰이 단독으로 저만 연행했다. 경찰서에서 8시간 동안 감금당하고 조서를 작성했다. 그 당시 대학생 신분이었는데 “기자를 사칭했다”는 식으로 협박했다.
경찰에게 필름을 뺏길 위험도 있었다. 그 당시 카메라가 캐논 최신 카메라라서 조작방법을 몰랐던 경찰을 속였고 필름을 빼앗기지 않았다,
필름을 빼달라는 경찰의 요구에 필름을 빼는 척하며 다른 필름으로 바꿔치기했다. 촬영이 안 된 필름 2통을 넘겨주었다, 그리고 사진전에는 연행했던 정보과형사들의 모습들도 보인다
두 번째는 6월 26일 남문 3000번 버스 서는 정류장에서 전경이 연행하려고 잡았지만, 시민들의 도움으로 도망갈 수 있었다.
▶ 오늘 공개한 사진 말고 미공개 기록물이 더 있나? 사진 보관은 어떻게 했는가?
당시 필름이 한 20롤 되는데 이번 사진전에서는 44점만 공개했다. 촬영된 필름 보관은 빛에 최대한 노출되지 않도록 암막(검은색으로 포장형태) 처리하고 필름전용 보관용박스에 보관했다.
습기가 차지 않게 5년마다 파일을 갈았다. 햇빛을 안 보게 암막 처리했다. 그래서 1년에 한두 번만 사진을 본다. 사진전을 위해 스캐너 작업으로 디지털화했다. 모두 다 공개하면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이 더욱 정확하게 역사적 사실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 보도 사진작가를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진은?
제26회 한국보도사진전에서 시민이 뽑은 인기상을 받은 사진이다.
이 당시 부산 국제신문에 근무했었는데 1989년 4월 9일 부산대 정문 근처에서 열린 ‘현대중공업 탄압규탄 시위’ 때 촬영한 사진이다.
1989년 봄에 노동운동이 일어났는데 부산은 전국에서 제일 큰 곳이라서 뉴스에서 주목받았던 사건이다. 당시 부산대 시위 현장에서 소복 차림의 어느 칠순 할머니가 “이기 무슨 짓들이고”라고 대갈일성 하는 모습을 찍었다.
할머니는 시위대와 진압대를 나무라며 한 손에 불발 최루탄(SY44)을 들고 있었다.
한국보도사진전을 전시한 세종문화회관에서 있었는데 이 당시 일반 관람객들이 관람하고 투표해 ‘인기상’으로 선정됐다. 이때부터 인기상이 시작됐다.
이 당시 제 사진에 관람객들이 많은 글을 남겼다.
“이 할머니의 꾸중은 여러 면에서 옳다. 상하질서 없이 가치가 전도된 채로 지금 우리 사회는 기우뚱거리며 흘러가고 있다.
누구 하나 발 벗고 나서는 사람 없고 서로 자기만 잘되면 그만이라고 아우성들이다.
더욱 한심한 사실은 자기 몫도 정확히 알지 못하면서 덤벙거리는 몰골이다.
고난의 연륜을 쌓은 이 할머니의 질책이 혼탁한 사회의 먼지를 날려 보내는 한 가닥 신선한 바람이었으면 싶다.
마치 사회풍자극의 한 컷 같다. 아니 연극보다 더 참신한 감동이다.”
▶ 김경수 대표에게 사진은 무엇인가?
사진은 윤리다. 보도 사진작가의 창조적 정신은 윤리를 기반으로 한다. 전문직으로서의 사진기자에게는 일련의 책임이 따른다는 것이다.
미국사진기자협회(NPPA, National Press Photographers Association) 보도사진 윤리강령에는 사진에 명암이나 색 조정, 밝기조정도 안된다는 규칙 등이 십계명처럼 있다.
2003년 4월 1일 LA타임즈의 사진부장 콜린 크로프드(Colin Crawford)와 그의 부원인 브라이언 윌스키(Brian Walski)는 이라크 전쟁 사진을 더 좋게 구성한다는 이유로 사진 두 장을 하나로 합성해 해고당했다.
한 명의 영국 군인과 이라크 시민들의 사진을 변조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LA타임즈는 자신들의 웹사이트 편집자란에 그들이 신문 윤리를 어겼음을 공지했다.
나 역시 사진은 왜곡, 대체, 손상, 연출 등 그 어떠한 것이라도 윤리를 저버리고 창작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사진은 역사적 진실을 사실 그대로 밝혀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트리밍(trimming)작업 즉, 잘라내기만 한다.
트리밍은 사진 원판에서 구도를 조정하기 위해 원화의 불필요한 부분을 잘라내는 작업이다. 이것이 보도사진만의 멋이다.
기록을 제때 남겨놓지 않으면 진실은 조작되거나 훼손될 수 있다. 더 늦기 전에 디지털 작업화하면서 수원의 6월 항쟁의 모습을 시민에게 공개한 이유다.
사진기자는 스스로 철학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요즘 사진기자들은 조회 수로 평가되고 있다. 자기 사진을 남길 기회가 없다는 뜻이다.
그나마 종합지는 다행이지만 스포츠 사진 기자 등은 긴박하게, 경쟁하듯 마감을 하다 보니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인터넷 시대가 되면서 많이 망가졌다. 이런 현실 속에서도 기자로서 윤리의식을 가지고 진실을 왜곡하지 않고 역사적 기록을 남길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가야 한다.
▶ 앞으로 계획은?
전시회를 찾은 분들의 반응이 너무 좋다.
(사)수원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에서도 보관하고 있는 사진들이 비전문가들이 찍은 사진이고 흑백사진이어서 현장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며 이번에 공개한 사진을 보고 기뻐했다.
구본주 (사)수원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위원도 사진 속에 있는 자기 모습을 보며 많이 기뻐했다.
그 당시 기록사진을 더 공개해서 역사의식을 고취할 수 있도록 연감 등을 만들어 기록물을 잘 남겨놓을 것이다.
이렇게 기록물을 보존하는 과정이 민주주의가 진화되는 과정이다. 우리가 진화시킨 민주주의가 후배들을 통해 또 다른 모습으로 민주주의가 진화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뉴스피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