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인조정 분절인형과 연기 중심의 극단, 인형극연구소 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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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인조정 분절인형과 연기 중심의 극단, 인형극연구소 인스
  • 윤민 기자
  • 승인 2021.10.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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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인형극의 멘토를 찾아서 06 _ 인형극연구소 인스 신인선 대표
▲ 작업에 대해 디테일한 조언을 하고 있는 인스 신인선 대표와 이동건 멘티. ⓒ 뉴스피크
▲ 작업에 대해 디테일한 조언을 하고 있는 인스 신인선 대표와 이동건 멘티. ⓒ 뉴스피크

[뉴스피크] 서울 성북구 한 작은 건물. 1층 부동산, 다방 간판이 붙여진 지하에 인스 작업실 겸 연습실이 있다. 인스의 입구는 재미있다. 지하 통로 위에 종이로 다방이 아닌 인형극연구소임을 알리는 종이가 붙어 있는데, 가끔 다방을 찾아 방문하시는 어르신 때문이라니 서로 당황했을 그 풍경이 상상돼 절로 웃음이 배어나온다.

▲스펀지 인형을 만들고 있는 안서연 멘티와 신인선 멘토. ⓒ 뉴스피크
▲스펀지 인형을 만들고 있는 안서연 멘티와 신인선 멘토. ⓒ 뉴스피크

문을 열면 인스의 연습공간이기도 한 제법 넓은 공간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둘러보면 사방은 포스터나 간단한 소품만이 보이는 그저 벽으로 최대한 깔끔하고 넓게 구성되어 있고, 안쪽 면에는 다양한 소품 등으로 또 하나의 벽이 만들어져 있다. 그 앞에 탁자에는 신인선 대표와 2명의 멘티들이 인형을 만들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배우 출신인 이동건 멘티는 작은 칼과 스펀지를 들고 씨름 중이다. 이번 학교에 참가하면서 가장 큰 변화가 “제가 바느질을 하고 있다.”는 걸 꼽을 정도로 생소한 분야에 도전하고 있으며 그 힘겨움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래도 가장 해맑고, 화통하게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하고 있는 듯하다. 

▲ 힘겹지만 즐거운 인형 만들기.  ⓒ 뉴스피크
▲ 힘겹지만 즐거운 인형 만들기. ⓒ 뉴스피크

그에 비해 시각예술을 전공한 안서연 멘티는 바느질에 거침이 없다. 멘토 역시 “너 바느질 잘한다!” 한마디 칭찬이 절로 나오는데, 진지하고 묵묵하게 바느질을 하면서 냉큼 대답한다. “저 바느질 되게 잘해요!” 조용한 작업이 진행되는 탁자 위로 절로 웃음이 넘나든다.

▲ 벽 너머 작은 작업실에는 인스의 인형들이 전시되어 있다.  ⓒ 뉴스피크
▲ 벽 너머 작은 작업실에는 인스의 인형들이 전시되어 있다. ⓒ 뉴스피크

잠시 벽 너머를 둘러보자 인형과 재봉틀 등 각종 소재와 장비 등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다른 인형극단에 비해 놀랍게도 심플하고, 간단하기에 오히려 인상적이다. 이는 인스만의 특징이며 또한 자부심이기도 하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된다.

인형극연구소 인스는 2011년에 창단했다. 공연을 항상 같이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공식적인 극단원은 신인선 대표만인 1인 극단으로 10년을 꾸려온 셈이다.

원래 대학원에서 연극연출 전공했던 신 대표의 첫 무대이자 직장은 코미디 극단이었다고 한다. 신 대표는 현장에서 작업을 할 수 있는 곳을 찾던 중이었고, 극단을 운영하던 대학원 선배는 첫 만남에서 “너 내일부터 당장 들어와!”라며 고민을 해결해주었다. 

▲ 공연의 기획과 인형의 활용에 대한 신인선 대표의 조언은 구체적이고, 또 열정적이다. ⓒ 뉴스피크
▲ 공연의 기획과 인형의 활용에 대한 신인선 대표의 조언은 구체적이고, 또 열정적이다. ⓒ 뉴스피크

그렇게 신 대표의 극단생활은 급박하고, 파란만장하게 진행되었다. 처음 시작은 ‘어린왕자’라는 작품의 조연출이었다. 그런데 석 달 동안 준비하던 정기공연을 한 달 남기고 주인공을 맡은 친구가 사라져버렸다. 모두가 당황했을 그때 연출을 맡은 선배가 한 마디를 던지면서 신 대표의 행보는 또 다시 변하였다.

“인선아, 네가 어린왕자가 되어야겠다.”

‘어린왕자’는 인형이었고, 나머지는 배우가 연기했던 공연이었는데, 그 어린왕자가 3인 조정 분절인형이었다. 신 대표는 ‘어린왕자’를 거치면서 조연출부터 배우도 겸하다 나중에는 인형극을 같이하는 코미디 전문 극단의 배우이자 의상 디자이너가 되었다. 어린왕자와의 인연은 인형극연구소로 10년이 넘게 이어져 오는 것이다.

▲ 다른 어느 극단보다 테이블에서의 사전기획에 많은 시간을 들이는 인스의 스타일이 그대로 묻어나는 멘토링.  ⓒ 뉴스피크
▲ 다른 어느 극단보다 테이블에서의 사전기획에 많은 시간을 들이는 인스의 스타일이 그대로 묻어나는 멘토링. ⓒ 뉴스피크

우연처럼 번개처럼 다가온 역할들이지만, 그 인연에서 가장 중요했던 건 ‘재미’와 ‘적성’이 아니었을까? 당시 신 대표는 인형과 인형 옷을 만드는 작업이 너무 재미있었다고 한다. 어쩌면 대부분 인형사들은 우연처럼 다가온 인형과의 만남에서 자신의 재능과 재미를 이끌어내는 마법과 같은 시간을 통해 평생의 업으로 인형극을 시작하는 듯하다.

“예전 극단에서는 자기 인형은 자기가 만들 줄 알아야 했어요. 직접 인형을 깎고, 의상을 만들어야 했죠. 물론 공연용은 전문가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직접 인형과 옷을 만들고, 바느질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더 잘 만들고 싶어서 공부도 하게 되고, ‘공연의상도 좀 해줘!’ 라는 요청도 들어올 정도였죠. 그런데 사람 옷은 인체를 알아야 하잖아요. 그래서 무대예술 아카데미(아르코)에 입학해 의상까지 전공하게 되었어요.”

아카데미에서도 또 다른 우연과 인연이 기다리고 있었다. 선생님 중 한 분이 보통의 의상과는 다른 인형극적인 요소를 좋게 보시고 다양한 현장에 데리고 다니거나 참여하게 해준 것이다. 덕분에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과 같은 손맛이 필요한 시대의상 작업에 참여해볼 수 있었다. 특히, 극단 수레무대의 ‘코메디아 델 아르테’ 초연 작업에 참여한 것은 소중한 경험이었다.

‘코메디아 델 아르테’는 중세시대의 연극사조로, 이태리 즉흥희극의 원조라고 한다. 당시 신 대표는 중세 연극의 텍스트를 찾아내고, 번역하는 이미지를 연구해 의상을 만드는 등의 작업을 수행하였다. 인터넷이나 유튜브가 없던 시절이었고, 자료도 부족했기에 이미지 컷 하나를 가지고, 연구해서 극단 내부의 의상팀에서 직접 인형과 의상을 만들어야 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그렇게 힘겹게 만든 의상은 모두 독특하여 참신했기에 당시 세간에 상당한 주목을 받게 되었다. 물론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그리고 신 대표는 그 과정이 너무 재미있었고, 그 일이 자신의 적성에 맞음을 느끼게 된다. 그 인연과 재미는 신 대표가 지금 ‘인스’를 만들고 인형을 만들고 있는 힘이 되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 연기에 대한 정체성과 자부심이 더해지면 지금의 ‘인형극연구소 인스’가 그대로 그려진다.

▲ 인형을 만드는 과정이 섬세한만큼 주의할 점과 방법도 디테일할 수밖에 없다. ⓒ 뉴스피크
▲ 인형을 만드는 과정이 섬세한만큼 주의할 점과 방법도 디테일할 수밖에 없다. ⓒ 뉴스피크

“인스는 다른 극단과 약간 차이가 있어요. (인스에는) 연기 못하는 인형 조정자가 없어요. 연기가 무조건 어느 수위로 올라와야지만 돼요. 일반적인 배우들의 신체, 화술, 감성 훈련이 되어야 하고, 거기에 인형과 내가 만나서 생겨나는 마술적인 요소를 이해하고, 헌신할 수 있어야 인스에서 작업을 같이할 수 있다고 말해요. 그래서 인스는 공연을 준비할 때 테이블 회의를 오래하는 편이에요. 작품분석과 대사 연습을 많이 하는 편이라 그래요.”

현재 진행하는 멘토링 역시 인스의 철학이 그대로 담길 예정이라고 한다. 인형 만들기 등 다른 극단의 멘토와 비슷한 과정이 있겠지만, 가능하다면 연기 쪽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어차피 이번 인형극학교는 인형조정까지 해야 하고, 팀 프로젝트가 진행되어도 멘토링 수업은 계속되니 프로젝트 또는 개인적으로 만든 인형과 함께 할 수 있는 연기를 도와주려고 한다는 것이다.

▲ 스펀지 하나하나가 다듬어져 머리와 몸과 손과 발이 된다. ⓒ 뉴스피크
▲ 스펀지 하나하나가 다듬어져 머리와 몸과 손과 발이 된다. ⓒ 뉴스피크

“우리는 약간 되바라진 배포가 있는 것 같아요. 우리끼리 만들어서 쇼 케이스를 하자고 의기투합이 되어서 ‘고도를 기다리며’를 올렸어요. 오래 인형극을 하신 분들이 이게 인형극이야? 할 정도로 파격적인 공연이었죠. 그때 이야기했어요. 우리는 남다른 철학을 가지고 있다고.  인형극에 목숨을 걸었지만, 다른 차원의 인형극을 해보고 싶기 때문에 배우들의 연기가 중요하다고 말했죠.”

연기에 대한 욕심, 인형극에 대한 인스의 실험은 장르 자체를 가리지는 않는다. 그중 가장 신 대표가 자신 있어 하는 분야는 3인 조정 분절인형이라고 한다.

“‘어린왕자’ 이후 3인 조정 분절인형을 한지가 햇수가 20년이 넘어가고 있어요. 공연도 오래했고, 파트너도 바꿔가면서 공연을 하다 보니 제작방법, 3인 앙상블 등 인형을 살아있게 만드는 티칭 노하우가 생긴 것 같아요.”

▲ 지하 계단의 끝에 재미있고 활달한 인스의 간판이 달려 있다. ⓒ 뉴스피크
▲ 지하 계단의 끝에 재미있고 활달한 인스의 간판이 달려 있다. ⓒ 뉴스피크

그 티칭 노하우와 연기에 대한 관심과 조언은 인스 멘토링이 진행되는 테이블 위에 그대로 펼쳐진다. 잔잔한 인스의 테이블은 그래도 가장 넓고, 격렬한 공간이 되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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