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레건 주를 벗어나기 전 잠시 쉬어가는 기분으로 포트랜드에서 행장을 풀었다.
포틀랜드에서는 고민이 많다.
목적지인 시애틀이 너무 가깝다. 목적지가 가까우면 사람의 마음이 바빠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주변에 가고 싶은 곳이 너무 많기도 하다. 제가 바다지 또 뭐가 있겠어 하는 오만함을 가볍게 눌러준 오레건코스트도 다시 보고 싶고, 눈 덮힌 후드 산도 보고 싶다. 이럴 때일수록 돌아가라 했나?
바쁜 마음을 추스르고, 달랠 겸 잠시 도시를 들린다.
그래도 포틀랜드에 갔다왔다는 표는 내야 하지 않겠나.
건물과 거리는 하나하나가 소품이 되고, 독특한 예술이 되고 있는 듯하다. 리듬이 있는 곳처럼 느껴진다. 색이 느껴진다. 약간의 두려움. 그러면서의 친근함.
왠지 거닐고 싶은 마음이 솟는다.
대중교통이 발달되어 있는 도시라고 하는데, 도로의 가운데는 지상을 달리는 열차의 흔적도 보인다.
근대적이고 우람한 건물과 고전적인 건물이 공존하고 있는 한적한 도시, 포틀랜드의 첫 느낌은 그렇게 다가온다.
도시에 대한 정보는 하나도 없지만, 이곳의 올드타운은 그 느낌에 비해 덜 알려진 곳은 틀림이 없는 듯하다. 그 거리를 그저 하릴없이 걷다 보니 호텔을 나서 도심을 오는 길에 봤던 촘촘한 철골의 다리가 보이고, 길게 뻗은 수변공원이 보인다. 포틀랜드의 워터 프론트 파크 Tom McCall Water Front Park이다.
좀 더 익숙한 공원이다. 우리에게는 한강이 있지 않은가!
주위가 시원해진다.
포틀랜드의 사람들이 이곳에서 다양한 해상스포츠를 즐기기도 한다는데, 오히려 공원에 산책과 운동 나온 사람들이 더욱 눈요기가 되고, 나에게는 공원 그 자체가 더욱 눈을 즐겁게 한다.
미국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게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 광활함이라고 답할 듯하다. 하지만 그게 너무 익숙하다고 말한다면, 수려한 철골문화라고 다시 답할 듯하다.
도로를 달리다보면 불쑥 나타나는 철골의 다리들. 꾸미지도 않고, 친절하지도 않다. 그렇지만 시간의 흔적을 새기고 있고, 강인하기 그지 없다. 그게 높이 솟은 나무와 그 그늘과 어울려 나름의 멋을 뿌려내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 ‘sideways’ 에서 주인공이 자기의 원고가 최종 거부됨을 알고 와인을 양동이째 들이킨 후 철골다리를 배경으로 신세한탄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구질구지함과 소심함이 은근한 강인함의 철골다리와 그렇게 어울릴 수가 없었다.
그 단단하고, 무미건조한 미적 합리성의 세계가 바로 내가 느끼는 미국이기도 하다.
포틀랜드에서도 여전히 철골다리는 내 시선을 잡아끈다. 아니 더욱 현란하기까지 하다. 중간에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멋과 기교까지 부렸다. 눈이 즐겁지 않을 수가 없다.
방금 지나온 도시는 낡은 벽돌의 한적한 도시였건만 다리에는 나름 멋을 부린 현란한 철골의 다리이고, 그 너머에는 유리의 컨벤션센터가 있다. 그리고 공원의 잔디 너머로는 높이 솟은, 마치 현세의 것이 아닌 것 같은 빌딩이 보인다. 시간이 모여 있는 곳, 포틀랜드이다. 공원을 거니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많은 시간을 꾹, 꾹 눌러서 볼 수 있으니, 참으로 놀라운 곳임이 틀림없다.
글 이철호, 사진 김영민
* 포틀랜드
오레건 주 최대의 도시이며, 컬럼비아 강 근처에 있다. 원래 인디언들의 야영지였으며, 1829년부터 정착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지명은 매사추세츠 주의 보스턴과 메인 주의 포틀랜드가 물망에 올랐으나 두 정착민이 동전던지기를 한 끝에 포틀랜드로 결정되었다고 한다. 골드러시와 오리건 통로를 따라 몰려든 많은 이주민들에 힘입어 촉진되었으며, 미국인이 서부로 진출했던 초기의 통로가 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도시는 숨겨진 매력이 많을 뿐더러, 주변에 갈 곳과 볼 곳이 많은 곳이다. 도시 주변에는 강이 만든 아기자기한 매력이 많고, 범위를 넓혀보면 높이 259m의 멀트노마 폭포, 눈에 덮인 후드 산 등이 있다. 또한 나이키나 컬럼비아와 같은 스포츠웨어의 고향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