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미향 의원 재판 참관기] 검찰과 언론이 짜놓은 모독과 능욕
글: 전지윤 '다른세상을향한연대' 실행위원
[뉴스피크] 지난 6월 10일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윤미향 의원에 대한 재판에 갔다 왔다. 검찰이 준사기 등의 혐의로 걸어서 벌써 1년 동안 진행되고 있는 재판이다. 그동안 재판 과정에서 어떻게 검찰의 무리한 기소가 실패하고 진실이 드러나고 있는지 소식만 전해 듣다가 이날은 직접 참관을 갔다. 그래서 평생 처음으로 윤미향 의원도 직접 만나보게 됐다. 그동안 멀리서 응원하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기만 했지 윤 의원을 직접 만나보게 된 것은 처음이었다.
이번 재판은 아침 10시에 시작해서 거의 저녁 8시에 가서야 끝났다. 정말 힘들고 지치는 경험이었고, 이런 재판을 1년 동안이나 해온 윤미향 의원과 변호사 분들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판에 참관 가서 정치검사들의 위험한 재능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정치검사들이 짜놓은 프레임은 4중의 의미로 잔인하고 모독적이었다.
첫째, ‘위안부’ 피해자들과 연대해 온 지난 수십 년간의 활동을 ‘할머니들을 이용하고 학대하며 사욕을 챙기며 비리를 저질러 온’ 것으로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윤미향 의원과 정의연 활동가들에 대한 지독한 모독이었다.
둘째, 일본의 식민지배와 전시 성범죄에 대한 반성과 사과를 요구해온 역사적인 저항을 ‘치매에 걸린 제정신이 아닌 할머니들이 윤미향과 정의연에 속아온 것’으로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지독한 모독이었다.
셋째, 모든 것을 바쳐서 고령과 노환의 위안부 피해자들을 돌봐온 헌신을 ‘할머니들을 속여서 돈을 빼돌리고 돈세탁을 해 온 것’으로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이미 이 세상을 떠난 고인(정의연 마포쉼터 고 손영미 소장)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모독이었다.
넷째, 수십 년간 반전평화와 여성인권를 위해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투쟁해 온 두 동지(윤미향과 길원옥)들의 인간적 관계를 갈라놓고 서로 대립하게 만들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용서할 수 없는 비인간적 시도였다.
그리고 이것을 위해 이날 정치검사들은 길원옥 선생님의 양아들인 목사와 그 부인을 증인으로 불렀다. 2020년에야 양아들로 등록하긴 했지만, 지난 수십 년간 실제로 길원옥 선생님과 같이 살거나 보호와 돌봄을 제공한 적은 별로 없는 사람들이었다. 이 두 사람에 대한 검찰의 심문, 변호사의 반대심문, 검찰의 보충심문, 재판장의 심문에 하루 종일이 걸렸다.
일단 두 사람은 고 손영미 소장님이 수십 년간 얼마나 헌신적으로 길원옥 선생님을 돌봤는지 결코 부정하지 못했다. ‘정말 가족과 같은 분이었고 너무 고생을 많이 하셨고, 우리는 항상 감사했고 그 선생님 앞에서 항상 미안한 죄인이었다’고 했다.
또 두 사람은 길원옥 선생님이 윤미향, 정의연과 함께 한 활동이 얼마나 의미있는 것이었는지, 또 길원옥 선생님이 그 활동에 얼마나 열정적이었는지도 정면으로 부정하지는 못했다. ‘일본의 사과를 요구하며 평화와 인권을 위한 활동에 열심이셨고 행복해하셨다’고 했다.
또 두 사람은 매주 한번 씩 길원옥 선생님을 찾아와서 만나고, 수시로 통화하면서 길원옥 선생님의 정신 상태에 대해서 어떤 문제도 느끼지 못했다고 했다. ‘정신력이 대단하신 분이었고, 같이 민화투를 치며 시간을 보낼 때도 짝을 잘 맞추셨고 저를 많이 이기셨다.’(양아들)
증언을 들으면서 몇 가지 자연스러운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양아들 목사는 길원옥 선생님에게 매주 찾아와서 계속 돈을 받아갔다. 또 무슨 일이 생기면 거액의 돈을 받았다. 다 큰 자식이 부모에게 돈을 주기보단 받아간 것은 상식적이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목사는 ‘나는 목회자이기에 돈에 관심이 없고, 어머니가 주시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양아들과 그 부인은 결국 정치검사들의 목적과 주문대로 이런 취지의 진술을 했다. ‘알고보니 어머니는 2014년부터 치매였다. 따라서 제정신이 아닌 상황에서 정의연과 윤미향에게 이용 당해 온 것이다. 윤미향과 손영미가 길원옥에게 지급된 정부지원금을 빼돌린 것 같다. 매달 300씩 나온 돈이 다 어디로 갔는가. 스스로 돈 관리할 능력도 없는 사람이 북한동포와 재일조선학교 등에 기부금을 낸 것도 정의연에 물들어서 그런 것이다.’
정치검사들은 자신들이 압수해 간 수많은 자료와 윤미향-손영미 간의 사적인 문자 대화 등을 증거로 제시하면서 이것을 뒷받침하려고 했다.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 독점, 금융과 통신 자료들에 대한 광범한 압수수색권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길원옥 선생님이 직접 자기 생각을 밝히며 활동하고 있는, 변호사가 제시한 각종 동영상들의 가치를 부정했다. ‘옆에서 누가 시킨 것을 아무 생각없이 읽은 것’이라는 논리였다.
그런데 정치검사들의 이러한 프레임과 두 사람의 진술은 스스로 지독한 논리적 모순을 일으키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 증언이 맞다면, 길원옥 선생님이 양아들 가족에게 준 거액의 돈, 2020년에 양아들을 정식 가족관계로 등록한 것, 2021년에 양아들 부부와 함께 ‘윤미향에게 속았다’며 민사소송을 제기한 것도 모두 ‘치매에 걸려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한 행동’이 되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몇 년간 치매 증상이 더욱 심해진 것이 분명하니까 말이다.
정치검사들과 두 사람은 ‘치매 증상이 있다고 해서 항상 의식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하면서 이 모순을 빠져나가려고 했다. 즉 ‘선택적 치매 효과’라는 것이다. 길원옥 선생님이 반전평화와 인권을 위해 한 활동은 전부 ‘치매에 걸려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한 일’이고, 양아들 부부에게 돈을 주거나 정치검사들의 프레임에 맞게 한 행동은 전부 ‘가끔 제정신이 돌아오면 한 일’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너무 설득력이 없어 재판부도 계속 의문을 던졌다. 차라리 양아들 목사의 말처럼 ‘이 모든 게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는 게 더 그럴듯해 보였다.
그 외에도 두 사람의 진술에는 많은 모순이 있었다. 양아들 목사는 ‘나는 돈에 관심이 없어서 모든 것은 부인에게 맡겼다’고 했다. 그러나 부인은 ‘남편이 어머니에게 매번 돈을 받아오는지 나는 잘 몰랐다’고 했다. 또 부인은 ‘어머니의 활동을 지지하고 대부분의 기사들을 찾아봤다’고 했다. 그러나 길원옥 선생님이 사회운동 단체들에 기부금을 낸 기사들만은 이상하게 다 못 봤고 몰랐다고 했다.
또 두 사람은, 길원옥 선생님에게 현재 얼마의 정부지원금이 나오고 얼마나 지출하냐고 묻자 ‘매달 600 정도가 나오지만 노환 때문에 간병비 등이 많이 나가서 남는 돈이 거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의연을 향해서는 ‘어머니에게 매달 나온 정부지원금이 다 어디갔냐’고 하는 것이다.
‘김복동 할머니를 기억하냐’는 질문에 양아들 목사가 ‘맨날 담배 피우고 방에 들어가면 담배 냄새가 가득했던 할머니’라고 한 것도 듣기가 불편했다. ‘어머니와 정의연의 활동을 지지했다’는 사람이 김복동 선생님이 했던 활동의 의미와 그 중요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날 재판에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이 모든 게 정치검사들과 주류언론들의 책임이라는 사실의 재확인이었다. 양아들 부부는 자신들이 윤미향, 손영미, 정의연을 불신하고 의심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 ‘이용수 할머니 기자회견 때만 해도 그냥 설마하고 넘어갔는데 그 이후에 언론이 자꾸 매일같이 떠들고 검찰이 압수수색하고’ 그러면서 생각이 바뀌었다고 했다.
그때부터 이들은 불안, 불심, 의심에 가득찬 눈으로 윤미향 의원과 정의연을 바라보게 됐을 것이다. 그래서 그때부터 자신들이 고 손영미 소장님과 통화할 때마다 몰래 녹음을 시작했다고 증언했다. 또 손영미 소장님을 노골적으로 의심하고 압박하면서 ‘그동안의 모든 통장과 거래내역을 보여달라’고 요구했다고 했다.
그리고 양아들 부부는 사망 직전에 손영미 소장님이 ‘언론 보도와 검찰 수사 때문에 매우 힘들고 너무 머리가 아프고 잠도 못 자며 매일 약을 먹고 있다고 했고, 그래서 횡설수설하면서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고 증언했다. 결국 검언 합작의 엄청난 마녀사냥 속에 주변인들의 돌팔매까지 날아오자 손영미 소장님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양아들 부부는 당황했을 것이고, 정의연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두 사람을 원망했을 것이다.
그래서 더욱 당황하고 책임을 돌리기 위해 ‘손소장은 돈을 빼돌려서 돈세탁을 하다가 죽었고, 그 뒷배는 윤미향이다’는 식의 댓글을 온라인에 올리게 됐을 것이다. 정치검사들과 주류언론들은 그것을 또 이용하며 양쪽의 갈등과 대립, 불신을 더욱 부채질했다. 결국 두 사람도 검찰과 언론이 짜놓은 프레임 속에서 윤미향과 정의연을 불신하기 시작했고, 그 정치적 효과 속에서 움직였던 것이다.
그래서 '변명하며, 울며, 정의연을 비난하며' 증언하는 두 사람도 그저 안쓰럽게 보였고, 이 모든 사태를 일으킨 정치검사들과 족벌, 주류 언론들에 더욱 분노하게 됐다. 그리고 같이 돌을 던지거나 침묵했던 사람들이 원망스러웠다. 자부심과 보람이 좌절감과 고통으로 바뀌고, 꿈과 희망이 악몽과 절망으로 바뀌면서 끈을 놓았을 손영미 소장님의 마음이 다시 아프게 떠올려졌다.
일본정부가 적반하장으로 나오고 한국정부가 소홀한 속에서, 위안부 피해자들이 고령과 노환뿐 아니라 위안부 피해가 낳은 상처와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각종 육체적, 정신적 후유증을 보여 온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정의연은 길원옥 선생님의 단기 기억 상실과 치매 증상을 숨긴 적이 없었다.
이미 2019년에 나온 영화 <김복동>의 마지막 장면은 길원옥 선생님이 김복동 선생님을 기억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거기서 길원옥 선생님은 김복동 선생님과의 추억이 희미해져 가는 것을 괴로워한다. “요즘에 갈수록 기억이 안나요. 잊어버리는 약을 먹었나, 까맣게 몰라.”
재판에서 양아들 부부는 ‘어머니가 손영미 소장님이 죽은 것도 모르는 것 같다. 그게 차라리 나은 일일지 모른다’고 했다. 그럴 수 있다. 그렇게 서로 사랑했던 이의 비극적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니까.
그러나 더 끔찍한 것은 길원옥 선생님이 정치검사들과 주류언론들이 짜놓은 프레임 속에서 ‘내가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동지라고 믿었던 윤미향에게 이용당했다’는 ‘기억’을 갖고 인생의 마지막을 보내다가 결국 우리 곁을 떠나는 것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무관심과 침묵과 방관을 뚫고 나서야 한다.
글: 전지윤 '다른세상을향한연대' 실행위원